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변호사

“여러 명이 함께 창업할 때는 주주 간 계약서를 꼭 써야 합니다. 각자의 역할과 기대 수준, 업무에 따라 지분을 나누고 책임 부분에 대해서도 모두 계약서에 담아야 하죠. 문서화하지 않은 약속은 믿지 마세요. ‘잘 되면 나중에 지분 줄게’ 같은 말은 계약서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IT(정보기술) 분야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에 대한 자문을 전문적으로 하는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40) 변호사가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최근 IT 기술의 발전을 활용한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법률 지식이 부족해 회사를 시작할 때 어려움을 겪는 창업자들이 많고 창업 초기 비용 부담 때문에 법률적인 부분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도 많다. 공동 창업자나 창업 초기 참여자들끼리 법적 분쟁을 겪는 일도 부지기수다.

정 변호사는 2월 26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꺼내기 껄끄럽고 돈만 생각하는 속물 같아 보인다는 생각에 주주 간 계약서를 명문화하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꼭 문제가 생긴다”며 “서로 충분히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를 계약서로 남기는 절차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도 올해로 로펌 설립 3년째를 맞은 창업자다. 정 변호사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2009년부터 4년간 대형 로펌 세종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2년 7월 법무법인 태평양 출신인 이병일 변호사와 함께 창업자에 대한 법률 자문을 목표로 세움을 창업했다.

세종을 그만둘 당시 정 변호사는 주변에서 ‘현실감각이 없다’ ‘세상이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 같은 소리를 잔뜩 들었다. 그는 “스타트업이 활성화되면 새 시장을 뚫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창업했지만, 처음에는 새로운 고객 기반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해 힘들었다”며 “지금은 스타트업들이 법률 자문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움은 스타트업의 사업모델 적법성 검토와 투자계약 검토 등의 업무를 주로 한다. 정 변호사는 “기업 성장 단계에서 법률상 절차가 가장 많은 때가 설립 직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인데 한 푼이 아쉬운 신생 기업 입장에서는 법적 부분을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디캠프에서 하는 무료 법률 상담.

정 변호사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디캠프에서 매달 5~6곳의 스타트업에 무료 법률 상담도 한다. 디캠프가 사전 신청자 중 대상자를 선정하면 미리 질문이나 고민사항을 전달받아 검토한 후 30분씩 상담을 한다. 사업을 처음 해보는 상담자들의 질문이 다양하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 스타트업들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더 알게 됐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에서는 1인 창업자라고 해도 회사를 시작할 때 법률 자문부터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잘 잡혀있다. 자문료를 당장 지급하기 어려울 때는 특정 시점에 현금으로 주겠다는 계약서를 쓰거나, 아예 처음부터 회사 주식으로 자문료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정 변호사는 “한국에서는 법률 서비스에 대해 여전히 공짜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싶다”며 “창업자들이 돈이 들더라도 법률 자문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도록 만드는 게 나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스타트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세종 근무 당시 서울과학고 후배인 김서준 노리 부대표가 찾아오면서다. 김 부대표는 수학 교육 앱(응용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노리를 공동 창업하면서 정 변호사에게 엔젤 투자(개인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를 부탁했다. 노리는 외부 투자를 잇달아 유치하며 회사가 커진 후에도 세움에서 법률 자문을 받고 있다.

성인용 웹툰 웹사이트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도 정 변호사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가 세움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레진엔터테인먼트 창업자인 한희성 대표가 주변의 소개로 그를 찾아왔다.

당시 한 대표는 인터넷에서 파워블로거로 유명했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만화가를 포함한 외부 업체들과 계약서를 쓰기 위해 정 변호사를 찾아왔지만 자문료 전액을 내지는 못할 상황이었다.

정 변호사는 “한 대표의 사업 아이디어가 좋아 보였는데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특별히 사정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800만원 정도 되는 자문료를 100만원대로 깎아줬다”며 “지금은 기업가치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036570)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수학 교육 앱 '노리'(왼쪽)와 웹툰 '레진코믹스'.

현재 세움은 60여곳의 스타트업에 법률 자문을 한다.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등 대형 IT 기업들도 세움의 고객사다.

정 변호사는 “네이버가 중고장터 앱 퀵켓에 투자할 당시 퀵켓의 자문 변호사로 협상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네이버에 스타트업과 관련한 자문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움은 더벤처스, 프라이머, 본엔젤스 등 액셀러레이터(창업 투자·육성 업체)의 법률 자문도 맡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는 창업자들이 사업에 첫발을 내딛고 회사 기반을 닦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주고 교육과 마케팅 등을 지원한다. 정 변호사는 IT 전문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에서는 최고법률책임자(CLO)로서 투자 관련 법률 자문을 한다.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변호사

그는 “아직 한국에서는 투자사가 스타트업에 불리한 조항을 담은 계약서를 내미는 경우가 많은데, 스타트업 업계 전반적으로 보면 불신이 계속 쌓일 경우 투자사에도 안 좋기 때문에 나쁜 관행을 고쳐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블로그(http://blog.naver.com/seumlaw)를 통해 '스타트업 법률가이드'를 연재하고 있다. 회사 설립부터 운영, 계약서 작성 등 스타트업에 필요한 법률 지식과 주의해야 할 법률 문제들을 소개한다.

그는 “창업자들의 질문을 받아보면 반복적이고 처리가 간단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며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는 창업자들로부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