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부동산유통부장

‘땅콩 회항’과 ‘백화점 모녀’ 사건 등 감정노동자에 대한 ‘갑질’로 한창 시끄러웠던 1월 초순의 일입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동네 식당을 살리러 제주도까지 찾아갔다는 보도자료를 접했습니다. 호텔신라가 지난해 2월부터 폐업 위기에 놓인 제주도 내 식당을 골라 조리법과 손님 응대법 등을 도와준다는 내용입니다.

언론에 비친 이부진 사장은 오너 3세로 다른 재벌가 자녀와 조금 다릅니다. 2011년 신라호텔 한복금지 사건이 벌어져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도 해당 디자이너를 찾아가 직접 사과했습니다. ‘메모’로 사과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또 ‘지배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한국 재벌과의 관행과 달리 2012년 3월에 열린 신라호텔 주주총회에서는 대표이사로 의사봉을 잡고 의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작년 3월에는 신라호텔 출입문을 들이받은 80대 택시기사의 가정형편을 듣고는 4억원이 넘는 피해액을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같은 일련의 일들로 네이버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관련 이미지를 검색하면 이부진 사장의 사진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부진 사장 관련 기사 중에서 ‘착한 일’만 뽑아 기사 큐레이션을 해봤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부진 사장을 ‘착하다’하면 언론사에 대한 비난 댓글 등 후폭풍이 많을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50여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네티즌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삼성 홍보지”냐 “삼성서 (돈이라도) 받았느냐”는 류의 댓글이 많았지만 “착한 일은 착한 일로 보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네티즌 스스로 색안경을 끼지 말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하자”는 댓글도 나오면서 기사에 대한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습니다.

댓글을 보면서 ‘100마리째 원숭이’ 이론이 생각났습니다. 1950년대 초 일본 교토대학의 영장류연구소에서는 미야자키현 고지마 섬의 원숭이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원숭이들은 고구마에 묻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서 먹었는데, 연구소에서 한 마리에게 바닷물로 고구마를 씻어 먹도록 학습시켰습니다. 바닷물에 씻은 고구마는 흙도 없고 소금기가 있어 맛이 좋아 다른 원숭이들도 차츰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는 원숭이가 100마리 정도로 늘어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고지마 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오분현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들까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로 접촉도 안 되는 지역에서 동일한 행동양식이 나타난 것입니다.

미래학자 라이얼 왓슨은 이 현상을 ‘100마리째의 원숭이 현상’이라는 이론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구마를 씻어 먹는 원숭이의 수가 임계치(臨界値)를 넘어서면 이 행동이 거리와 공간을 초월해 다른 집단으로 전파된다는 이론입니다.

이부진 사장 기사에 대한 댓글도 한쪽에 치우치다 어느 순간 누군가가 “잘한 것은 잘했다 하자”고 댓글을 달고, 또 다른 사람이 비슷한 내용을 달면서 비난 댓글과 균형이 잡힌 셈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세계를 달궜던 아이스버킷 열풍이 대표적입니다. 루게릭병을 앓는 한 미국 청년이 시작한 독특한 기부 캠페인은 나라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한 달도 안돼 모금액이 800억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물리적 접촉이 없어도 같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일정 규모를 넘기면 다른 지역까지 번지는 ‘100마리째의 원숭이 현상’이 인터넷과 만나,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앞당겨진 셈입니다. 인터넷이 나 한 사람, 단 한 번의 사건을 사회적인 현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커진 것이지요. ‘땅콩 회항’이나 ‘백화점 모녀 갑질’ ‘음식점 손님의 난동’ 등이 인터넷으로 퍼져 나간 속도를 보면 우린 일상적인 ‘100마리째의 원숭이 시대’를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 개인의 조그마한 행위가 신속하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인터넷을 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원숭이’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