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 선스타인 지음|이시은 옮김|21세기북스|344쪽|2만1000원

미국에서 9·11 테러가 일어나고 3년쯤 뒤였다. 여론조사를 해 봤더니 뉴욕 시민의 49%가 정부 관료들이 사건을 사전에 알고도 일부러 대응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보다 약 2년 뒤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약 36%가 연방 공무원이 세계무역센터 공격에 가담했거나 공격을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답했다.

미국인 상당수는 여전히 9·11 테러에 관한 수많은 음모를 믿는다. 기후변화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외계인 존재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이른바 음모론들이다. 이 개명 사회에 이런 음모론이 횡행하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저자는 음모론이 개별적인 음모설에 대한 믿음의 총합이라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다른 음모론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상호 모순적인 음모론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가령, FBI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암살했다는 설을 믿는 사람은 기후변화도 거짓말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높다. 또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가 지금도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설도 믿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저자는 음모론이 떠돌고 있는 현실과 온갖 루머에 흔들리는 사람들이 가진 심리와 행동 양상을 보여준 다음,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분석하고 정부 대응책을 제시한다.

이 책 전체는 11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여러 가지 주제를 망라한다. 동성 결혼이 허용돼야 하는지, 동물에게도 권리가 인정돼야 하는지, 양성평등 실현과 이를 방해하는 종교를 믿을 자유 같은 선진국형 가치 논쟁이 여러 사례와 함께 소개된다. 음모론은 그 중 한 가지 주제에 불과하다. 독자들 귀를 솔깃하게 만들 주제를 전면에 내세웠을 뿐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이슈들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후 독자들을 논의로 이끄는 한편, 사법부와 정치권, 정부 당국에도 적절한 해법을 조언한다. 오바마 정부 백악관 규제정보국 국장으로 활동했던 저자의 경험과 응용 행동경제학 분야 선구자로서의 학자적 고뇌가 엿보인다.

여러 주제들 가운데 관심이 가는 것부터 선별해 읽어도 무리가 없다. 각 주제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다소 관념적인 게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