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11시 경남 창원시 안골동에 있는 부산신항 한진해운 터미널.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부둣가에 세계 각지에서 온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파트 28층(83m) 높이의 크레인 36대가 컨테이너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컨테이너를 배에 싣고 있었다. 이 중 12대는 사람 없이 작동하는 무인(無人) 크레인이다. 강부형 한진해운 상무는 "무인 크레인은 부산신항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인건비 절감은 물론 화물 하역 시간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4일 오전 7시. 한진해운 소속 75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한 개)급 컨테이너선 보스튼호가 입항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한 이 배는 광양을 거쳐 부산신항에 들렀다가 다음 날인 15일 새벽 2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롱비치항으로 떠난다. 주목되는 것은 이 배에 실린 전체 화물 중 절반인 1114TEU가 중국 등에서 작은 배로 부산으로 이동한 환적(換積) 화물이다. 환적 화물은 중국·일본 등 인근 국가에서 부산항을 거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화물을 말한다.

이달 13일 경남 창원시 안골동에 있는 부산신항 한진해운 터미널에서 무인(無人)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옮기고 있다. 1대당 24억원인 이 크레인은 작업의 정확도를 높여 부산항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장비다. 부산항이 지난해 처리한 물동량은 전년 대비 6% 정도 늘어나 개항 이래 최대를 기록했으나 중국항의 급부상으로 세계 항만 순위는 6위로 한 단계 하락했다.

부산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1865만TEU로 전년 대비 5.5% 늘어나며 개항(開港)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부산항의 환적 화물량(941만TEU)은 사상 처음으로 국내 수출입 화물량(923만TEU)을 추월했다. 부산신항이 문을 연 2006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물량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작년 부산항은 지난해 중국 상하이 인근에 있는 닝보-저우산(寧波-舟山)항에 밀려 세계 5위 자리를 빼앗겼다. 중국 닝보-저우산항의 지난해 물동량(1943만TEU)이 전년 대비 12% 정도 늘어나며 부산항 물동량을 추월한 것이다. 사상 최악의 해운 불경기(不景氣) 속에서 부산항이 지금까지 나름 선전(善戰)하고 있지만 중국 항만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 못 할 경우 추락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중국 7개 항구와 경쟁하는 부산항

부산항은 현재 닝보-저우산항을 포함해 중국 동부 연안에 있는 칭다오(靑島)항, 광저우(廣州)항, 톈진(天津)항 등 7개 항구와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항만 순위 10위권에서도 싱가포르와 대만, 부산항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항이다.

류동근 한국해양대 교수는 "중국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에서 나와 부산항을 거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환적 화물량은 급감할 가능성이 높다"며 "경쟁력을 높여 인근 항으로 가는 화물들을 부산항으로 끌어오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부산항은 기후·지리적 이점과 가격 등 부산항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개 때문에 1년에 한 달씩 폐쇄해야 하는 중국항에 비해 365일 가동 가능한 부산항은 화물 적기(適期) 운송은 물론 비용 면에서 강점이 많다는 것이다. 상하이항의 경우 컨테이너 1개당 하역료가 8만~10만원 선이지만 자동화가 앞선 부산항은 1개당 5만원 안팎인 점도 매력이다.

부산항은 이를 위해 항만 인프라 확충을 본격화하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2020년까지 부산 신항 컨테이너부두 8개 선석(船席)을 추가로 개발하고 배후단지를 확충한다. 부두 길이도 700m에서 1050m로 늘려 초대형 선박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작년 9월에는 유럽의 환적 화물 유치를 위해 부산항만공사가 영국 런던에 유럽대표부를 설치했다.

중국항, 정부 지원 등에 업고 거센 반격

하지만 중국항의 반격도 거세다. 부산항을 추월한 닝보-저우산항은 하역부두 길이 4500m, 밀물 수심 21m 이상으로 30만t급 선박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초대형 항만이다. 자체 물량이 전체의 90%에 달하는 닝보-저우산항은 이런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 내 산업단지에서 항구로 물량이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철도를 연결하는 '내부 철로-해상 통합수송 서비스'를 중국 중서부까지 확장하고 있다. 석탄이나 철광석 수송 등은 양쯔강이나 위야오강 등에서 항구로 직결되는 물류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칭다오항 등 중국 북부지역 항구도 매년 7~8%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부산항을 맹추격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칭다오항에서 부산항으로 가는 환적 화물량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칭다오항은 최근 부산항에 환적하러 가는 물량에 대해서는 하역료를 5% 인상했다. 반면, 환적하지 않고 칭다오항을 자주 이용하는 선사는 최고 90%까지 하역료를 깎아주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2012년에는 칭다오항이 부산으로 환적하는 화물에 대해 하역료를 최대 50%까지 인상하려다 한국 정부의 항의로 취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이사는 "2000~2013년 칭다오항의 컨테이너 처리 실적이 632% 급증하는 동안 부산항은 54% 정도 증가에 그쳤다"며 "선사들이 부산항에 계속 환적 물량을 맡기도록 부산항의 매력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