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선릉역 근처에서 유통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선릉, 역삼 등 강남 일대에 스타트업이 많이 모여 있다”면서 “회사 주변을 ‘선릉콘밸리’(선릉과 미국 실리콘밸리의 합성어)라고 부르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스타트업이란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말합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에 비해 아직은 자금이 풍족하지 못해,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에 터를 잡은 걸까요.

서울·경기 지역 스타트업 분포 지도

스타트업 정보제공사이트 로켓펀치에 따르면 18일 현재 사이트에 등록된 1225개 업체 중 30% 이상이 서울 강남 지역에 둥지를 텄습니다. 스타트업 회사 3곳 중 1곳이 강남에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인데,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강남이 돈값을 한다”고 말합니다.

대다수 벤처캐피탈(VC)과 엔젤투자자 등은 강남에 몰려 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스타트업과 같은 새내기 회사에 돈을 지원하는 투자자들입니다. 현금을 쥐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는 곳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죠.

투자자와 스타트업 사람들이 사교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도 강남에 몰려 있습니다.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의 ‘디캠프’나 아산나눔재단의 ‘마루180’ 등은 모두 강남구 역삼동에 있습니다.

핀테크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 ‘왓챠’의 프로그램스 등 업계에서 이름난 스타트업들이 강남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유로 꼽힙니다. 이들과 친해지면 사업에 관한 노하우를 배우거나 투자자를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남 임대료는 ‘네트워크’를 갖기 위한 비용인 셈입니다.

P2P(peer to peerㆍ개인 간 거래) 대출 핀테크 사업에 뛰어든 고병남씨는 “하루에 미팅이 매일 많게는 열 건 넘게 잡혀 있는데, 대부분 강남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교통비, 시간 등을 절약한다고 생각하면 강남에 터를 잡는 것이 비싸지만은 않다”고 말했습니다.

신논현역 근처에서 창업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아무래도 주변에 창업한 기업이 많다 보니 자주 보게 되고 친해지면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면서 “잘 찾아보면 강남에도 그리 비싸지 않은 사무실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타트업이 강남에 몰리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오는 4월 네이버가 서울 강남 메리츠타워에 ‘D2 스타트업 팩토리’를 열고, 구글은 강남구 대치동에 ‘구글 캠퍼스 서울’을 개소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역삼동에 ‘하이테크 창업캠퍼스’를 설립하고 오는 2017년까지 투자사 10곳과 창업팀 160개 등을 유치할 예정입니다.

이를 두고 테헤란밸리의 부활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는 지난 1999년말~2000년대 초 넥슨, 엔씨소프트, 다음, 네이버 등 벤처기업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테헤란밸리’로 불리기도 했지만, 2000년 중후반에는 이들 기업이 판교, 분당 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과거의 명성을 잃은 바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고 해도, 무작정 강남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찬민 아우름플래닛 이사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최소 3~4년 동안은 매출이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별 생각 없이 강남에 자리를 잡아서 임대료 등 고정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합니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강남이 스타트업 기업들에 매력적인 지역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강남에서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기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