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SK그룹은 큰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頂點)에 있는 시스템통합업체 SK C&C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一家) 지분이 43.4%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이 이달 14일부터 시행되면서 꼼짝없이 규제 대상에 걸려든 것이다. SK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SK㈜와 합병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을 30% 이하로 떨어뜨리든지, SK C&C의 계열사 거래 비중을 현재 40%대에서 10%대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 SK그룹 관계자는 "일부에서 SK C&C와 SK㈜를 합병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며 "현재로선 문제 소지가 있는 내부 거래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에서도 시스템 통합업체 한화S&C가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로 지목됐다. 한화 S&C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상무(50%)를 비롯해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나눠 갖고 있다. 내부거래율은 50%가 넘는다.

◇'오너 처벌 가능성'에 떠는 재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재산을 불린 대기업 오너 일가를 처벌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에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회사가 다른 계열사와 연간 200억원 이상, 매출의 12% 이상을 거래하면 규제 대상이 된다.

재계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오너 일가까지 3년 이상 징역형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부당 내부 거래가 기업 임직원들을 처벌할 뿐 오너 일가는 처벌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담이다. 또 일감 몰아주기 수혜를 입은 기업은 3년 평균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도 부과받는다. 4대 그룹 소속의 한 임원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기업 오너들에게 앞으로 언제든지 사법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경고장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대기업 그룹들은 재작년부터 합병이나 지분 정리에 나서면서 규제 대상 기업 수를 줄여왔다. 기업 정보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2013년 122곳에서 2015년 2월 현재 83곳으로 줄었다. 공정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되기 직전인 이달 5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의 정몽구 회장 부자의 지분율을 30% 이하인 29.99%로 맞춘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럼에도 현대차 정몽구 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CJ그룹 이재현 회장, GS그룹 허창수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오너 일가들은 여전히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일가는 지주사격인 제일모직이 규제 대상에 걸렸지만 내부거래액을 줄이면서 규제받을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놨다. 작년과 재작년 내부 거래 비중이 높은 식자재 사업부인 웰스토리를 분사시키고, 빌딩사업부를 에스원에 양도했다. 또 내부 거래 비중이 10% 이하인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합병했다.

◇"모호한 잣대가 경영 리스크 키워"

기업들이 겁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정거래법 규제 조항의 모호성 때문이다. 모호한 규정 탓에 어떤 거래가 부당 내부 거래인지를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총수 일가를 위해 '정상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한 경우 규제 심사의 대상으로 하되, '정상가격과 7% 이상의 차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다시 말해 7%보다 비싸거나 싸면 특혜를 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상가격 범위의 기준이 모호한 데다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의 정상가격을 어떻게 산정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기업의 효율성을 증대하거나 긴급성, 보안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로 둘 수 있다'는 대목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케이스마다 공정위의 유권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전경련 송원근 경제본부장은 "규정이 모호할수록 기업들의 불안감이 더 커진다"며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규제 대상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현황을 들여다볼 것"이라며 "사안별로 판단해 구체적인 지침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에 대해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규제한다. 해당 계열사에 연간 200억원 이상 일감을 몰아주거나 다른 계열사가 국내 매출액의 12% 이상을 몰아주면 규제를 받는다. 이를 어길 경우 총수 일가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