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036570)와 넥슨은 다음 달 27일 열릴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벌일 것인가?

지금으로선 표 대결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 많이 나온다.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넥슨이 12일 보낸 최종 주주제안을 보면 엔씨소프트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넥슨의 주주 제안은 제대로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 “넥슨 제안, 엔씨소프트 주총에 올릴 것이 없다”

넥슨의 최종 주주제안을 본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다음달 27일에 열릴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에 넥슨 측 안건이 올라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13일 넥슨과 엔씨소프트에 따르면 넥슨의 최종 주주제안에 포함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①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②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를 허용하고, ③ 신규 이사를 선임할 때 그 정보를 넥슨 측에 먼저 알려달라는 것이다.

상법 363조에 따르면 주주제안이 법이나 기업 정관에 위배되지 않으면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고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 또 주주는 회사 측에 전년도 기준 주주총회일 6주 전에 이를 서면이나 전자문서로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법무법인 관계자들은 넥슨의 주주 제안이 반쪽짜리 요건만 갖췄다고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의 주주제안이라면 엔씨소프트는 주주총회에 안건으로 올려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 무엇이 미흡했나

넥슨의 주주제안은 일단 날짜 요건은 갖췄다. 넥슨의 지난해 정기주주총회는 3월 28일이었으므로 주주제안은 2월 14일전까지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내용 요건이 미흡했다.

① 실질주주 명부 열람·등사 → 이미 보장된 주주권리 확인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실질주주 명부의 열람과 등사를 요청했다. 게임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넥슨은 엔씨소프트에 “2월 안쪽으로 날짜를 지정해 정보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상법상 이미 보장된 내용이다. 상법에 따르면 보장된 주주권리는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릴 수 없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당연히 보장된 얘기를 재차 반복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 요청일 뿐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갈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엔씨소프트가 실질주주 명부의 열람과 등사에 응하지 않으면 넥슨은 언제든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

② 신규이사 선임 정보 공개 → 요청에 불과

신규이사를 선임해야 할 때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것 역시 요청에 불과하다.

만약 넥슨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염두에 두고 주주제안을 보냈다면, 상법 542조에 따라 특정 인물을 찍어서 요청해야 했다.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을 이사로 추천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주주제안에 집어넣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엔씨소프트는 큰 무리가 없는 이상 이를 다음달 27일 주총 안건에 포함시켜야 한다. 엔씨소프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넥슨은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고, 시기상 3월 주주총회 이후에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다.

하지만 넥슨은 “앞으로 이사 결원이 발생하면 넥슨 측에 먼저 알려주고, 넥슨 측 추천 이사를 받아달라”고만 요구했다. 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넥슨 측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③ 전자투표제 도입 → 이사회 결의 사항

전자투표제 도입은 이사회 결의 사항이다. 이사회에서 받아들이면 3월 주총에서 전자투표제가 도입될 수 있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자투표제 도입은 무산된다.

전자투표제 도입이 무산된다고 해도 넥슨 측에서 엔씨소프트에 조치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에 따르면 “전자투표제 도입을 정관에 넣어달라”고 한 것이 아니고 “이번 주주총회 때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요청이기 때문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엔씨소프트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미리 약속했고 넥슨도 이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면 부드럽게 요청하는 방식으로 주주제안을 보냈을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번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제는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1차 주주제안서를 근간으로 문구의 큰 변화 없이 최종제안서가 마련됐다면, 엔씨소프트가 넥슨의 주주제안을 정기주주총회에 올릴 필요가 없다. 올릴 것이 없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 드라마 속 극적 장면 없을까?

일부에서는 엔씨소프트 주주총회 장소에서 드라마 속 극적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엔씨소프트가 넥슨 측 주주제안을 정기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리지 않고, 전자투표제 도입도 이사회에서 거부하면, 주주총회 장소에서 소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넥슨 측 주주가 주주총회 장소에서 갑자기 일어나 “김택진 대표이사의 선임에 반대하고 넥슨 측 인사를 선임하길 바란다”고 말한다거나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라”고 건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장사 관계자들은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 있지만, 상법 위반이기 때문에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상법 361조~363조에 따르면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가 결정하고 통지된 사항에 대해서만 찬반을 논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넥슨 측 주주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김택진 대표이사의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앞서 넥슨 측이 김택진 대표의 재선임에 대해선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한 만큼 재선임 반대표로 표 대결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다.

결과적으로 증권가에서는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이 ‘약간의 쇼’라고 보고 있다. 적어도 이번 주주총회에 관해서는 진짜 경영권 분쟁을 하겠다는 의도보다 압박의 모양새가 강하다는 것이다. 증권사 소프트웨어부문 연구원은 “엔씨소프트 측에 ‘경영을 제대로 하라’는 경고를 좀 요란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시 주주총회에서 본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은?

물론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이대로 넘어가고 임시 주주총회에서 본 게임을 펼칠 가능성은 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15%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만약 엔씨소프트가 부진한 실적을 보이거나 주주 환원 정책을 약속대로 늘리지 않으면 넥슨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며 임시 주총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넥슨이 임시주주총회를 요구한다면, 그때는 정말 요건에 걸맞는 주주제안을 넣고 표 대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 넥슨 측은 전자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기존 이사의 해임과 신규 이사의 선임 등을 제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