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증세’를 가장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단이라 하고, 야당은 당장 이명박 정부에서 감세했던 법인세부터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비즈는 3대 세목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의 도입 역사와 현황, 각 세목의 증세 찬반 논쟁을 정리했다. 그리고 부동산세, 금융세 등 자산세에 대한 내용도 추가했다. 독자 여러분이 증세를 해야 할지, 한다면 어느 세목에서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지 판단해 보시길. [편집자 주]

주요국의 법인세율(최고세율).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80년대 초 소득세와 법인세 세율을 대폭 낮췄다. 세금을 낮추면 근로 의욕이 고취되고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고, 이것이 다시 세수(稅收)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감세(減稅) 정책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1990년대 미국 경제 호황의 바탕이 됐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20년 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추가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 이후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했다. 그 효과는 2005년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2007년까지 큰 폭의 세수 증가로 나타났다. 세율은 낮아졌지만 경제가 회복되며 세수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 성공은 2000년대 중후반 세계 각국의 법인세 인하 경쟁으로 이어졌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물론 싱가포르와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까지 법인세율 인하에 나섰다. 법인세율을 낮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자국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려는 조치였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경쟁에 합류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세법개정을 통해 과표 기준 1억원을 2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과표 구간별로 법인세를 3~5%포인트 인하했다. 우선 2008년 2억원 이하 구간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하(13%→11%)됐고, 다음해인 2009년 2억원 초과구간 세율도 3%포인트(25%→22%) 낮아졌다. 2010 년에는 2억원 이하 구간 세율이 1%포인트 추가 인하(11%→10%)됐다. 2011년에는 2 억~200억원 이하 과표 구간이 신설돼 이 구간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하됐고(22%→20%), 200억원 초과 구간 세율은 22%가 유지됐다. 이에 따라 현행 우리나라 법인세는 2억원 이하·2억~200억원 이하·200억원 초과 등 3단계 과표구간에 각각 10%·20%·22%의 누진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같은 선순환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법인세를 깎아준 이후 우리 기업의 투자·고용이 크게 늘어난 것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정부의 세수 부족은 심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업 사내유보금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어 정부가 깎아준 세금이 기업 곳간에 쌓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增稅) 논쟁이 확산되자 가장 먼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 1950년대 법인세 최고세율 70%대, 8단계 누진세율도

법인세는 기업(법인)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부가가치세·소득세와 함께 국가 재정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대 세목이다.

우리나라가 법인 소득에 과세하기 시작된 것은 1916년 일제 강점기다. 1934년에는 일반소득세에 포함돼 과세되다가 정부수립 이후인 1949년부터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이 분리 제정돼 1950년부터 법인세가 독립 세목으로 전환됐다. 우리나라 법인세는 1950년대 70%에서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다. 1950년대 최고세율이 70%대였던 법인세는 1970년대 후반 40%대로 낮아졌다.

1961~1982년에는 기업들이 주식시장 상장을 꺼리자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에 다른 세율을 부과하기도 했다. 1969~1998년에는 비영리법인과 영리법인에 차등 세율을 적용했고, 1999년부터는 조합법인에 대해 감면 세율을 적용했다.

법인세 과표구간도 여러 번 바뀌었다. 1950년대에는 8단계 누진세율이 적용됐는데, 1970년대 중반 이후 2단계로 단순화됐고, 2011년 세법개정에서 중간구간이 신설되며 다시 3단계 구조로 수정됐다.

◆ 韓 법인세율, OECD 평균 이하…법인세수 비중 하락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 징수액은 총 42조7000억원으로 총 국세 205조5000억원의 20.7%를 차지했다. 부가가치세(57조1000억원·27.7%)와 소득세(53조3000억원·25.9%)보다 비중이 작았다. 법인세가 총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22.6%에서 2013년 21.7%, 2014년 20.7%로 계속 축소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사진)는 취임 이후 줄곧 "법인세를 올리면 여러 부작용이 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법인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달 '정부가 대기업 위주 정책을 펴면서 법인세를 성역(聖域)화하고 있다'는 야당 의원의 주장에 "정부는 법인세를 성역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와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 경영 악화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증세 방안을 놓고 법인세 논쟁이 가열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법인세율 인상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 조치가 세수를 감소시키고 경제 활성화 효과는 없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기업 등 반대편에서는 법인세 징수 실적이 감소한 것은 경기 악화에 따른 것으로, 오히려 법인세 부담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4%(2014년 기준)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35.0%), 프랑스(33.3%)보다 낮고, 싱가포르(17.0%), 대만(17.0%), 스위스(8.5%)보다는 높다. 공제·감면 혜택을 포함해 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이보다 더 낮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은 16.0%로 지난 2009년 19.6%에서 3.6%포인트 하락했다.

◆ “법인세 인상, 기업활동 위축” vs “법인세, 투자에 중요 고려 요인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법인세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강조하며 법인세 인상을 통한 증세에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를 낮춰 투자를 유치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며 산업 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우리 경제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법인세율을 올린다고 당장 세수가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고민이다.

재계 역시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경제 전체에 좋지 않다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법인세율이 2%포인트 인상되면 우리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33%, 투자는 0.96% 감소할 것”이라며 “세입 기반도 약화돼 세수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 “2007~2009년 법인세율 인하는 법인세액을 7% 정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성장률 둔화는 법인세액이 17.5% 감소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최근 법인세액 감소는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인하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경기 악화에 따른 결과”라고 강조했다. 또 2013년 최저한세율 인상 효과가 올해 세수부터 나타나고, 기업소득환류세제도 올해부터 시행돼 실질적으로 보면 법인세 인상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 세수 확보를 위해 법인세율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인세율이 투자 등 국내 기업 활동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세율 인상에 따른 세 부담 증가가 기업의 투자 심리를 잠깐 위축시킬 수는 있지만 추가되는 세 부담이 기업의 평균적인 투자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법인세 부담이 기업 투자활동에 미치는 효과 분석’ 논문을 통해 “세 부담의 투자 효과는 음(-)의 방향을 나타내지만, 그 효과 크기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부분적으로 유의성이 확인된 경우가 있지만 이때 계수추정치의 절대값은 0.01 근처의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연구 결과로 나타난 세 부담 인하의 투자 증대 효과는 일반적인 기대보다 훨씬 작았다”고 밝혔다. 세 부담이 증가하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그 효과는 의미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법인세를 깎아 기업 활동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기업 활동에서 법인세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가리아와 파라과이 등 법인세가 10%대로 매우 낮은 국가의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국가들은 법인세가 낮아도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 활동을 장려하려면 법인세 인하보다 규제 완화와 미래 산업 육성 정책 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