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스마트폰 보급률이 30%대에 머물던 2011년, 잘 나가던 회사 동료 두 명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 명은 안랩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자 마자 ‘영업왕’ 표창을 받은 기대주였고 다른 한 명은 회사 내에서도 가장 기술적 난이도가 높기로 소문 난 기반기술팀 소속 엔지니어였다.

두 사람이 어린이집·유치원 교사가 쓰는 알림장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나서자 주위에선 대부분 어려울 거라 했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알림장을 손에 한 가득 들고 뛰어다녔다. 자금이 바닥났을 땐 자가용도 팔고, 원룸 전세금도 빼서 직원들 월급을 줬다.

이 회사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도 전 3억원을 선뜻 투자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있다. 외국계 대형 벤처캐피털(VC)을 나와 새 투자사를 설립한 지 3개월도 채 안 돼서였다. 두 명의 창업주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을 본 그는 5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투자자로서도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이 스타트업은 국내 굴지의 인터넷 업체 다음카카오에 인수되며 벤처캐피털을 흑자 전환시켜줬다. 키즈노트의 김준용·최장욱 공동대표와 케이큐브벤처스의 임지훈 대표 얘기다.

김준용 키즈노트 대표,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 최장욱 키즈노트 대표.

최장욱= 키즈노트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제 실제 경험이에요. 2011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3살이던 딸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아이가 큰 소리로 울더군요. 문이 닫힌 뒤에도 등 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하루 종일 가슴이 벌렁벌렁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별 일 아니긴 했지만 그 때는 심각했죠. 불안을 해소시켜준 게 바로 선생님이 직접 쓰신 알림장이었습니다. 활짝 웃는 딸 애 사진과 선생님 코멘트가 달려있는데, 교사와 학부모 간에 없어선 안 될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걸 선생님이 우리 아이 뿐 아니라 많은 원생들에게 다 써주셨을 테니 상당히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림장을 앱으로 만들면 선생님들의 수고도 덜 수 있고 저 같은 아빠나 엄마는 직장에서 어린 자녀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어 좋겠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참 겁 없이 시작했던 사업이에요.

김준용= 처음 어린이집 원장님들을 찾아다니며 테스트라도 해달라고 사정했는데 많이들 반대하셨어요. 아직 스마트폰도 별로 없을 때였고, 여러 모로 우리나라 현실에 잘 안 맞는다고요. 어떤 분은 오히려 저흴 걱정하시면서 “우리 어린이집에 도입해볼 테니, 성과가 좋지 않으면 서비스를 접는다고 약속하라”고도 하셨죠. 힘든 경험이었어요.

첫번째 어린이집에서 기대 이상으로 좋은 반응을 얻자 인근 유치원·어린이집들로 테스트 대상을 늘려갔다. 이듬해인 2012년 4월엔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법인을 설립했다.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첫 투자를 유치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의 일이다.

스마트폰 알림장 앱 '키즈노트'의 실행 화면

김= 사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임지훈 대표님 개인 블로그에 종종 들어가 투자 받는 방법이라든지 사업 계획서 작성법을 읽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임 대표님이 소프트뱅크벤처스를 떠나 신생 벤처캐피털인 케이큐브벤처스에 대표이사로 가신다더군요. 과감하게 투자해달라고 메일을 보냈어요.

임지훈= 키즈노트와 첫번째 미팅을 하고 나서 제가 투자팀에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여기 (투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필요성이었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문제 의식이었기에 이 분들이라면 충분히 답을 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두번째로 만난 자리에서 바로 투자 의향을 전달했어요. 케이큐브가 원래 ‘묻지마’ 투자로 좀 유명하거든요(웃음). 저희가 한 투자 중 70%가 제품·서비스 출시 전에 이뤄진 것들이니까요.

임 대표는 키즈노트에 대해 “밸류가 분명한 회사”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0~4세 유아는 총 150만명으로 집계되는데, 이들의 부모 뿐 아니라 멀리서 스마트폰으로 손주의 사진을 받아보길 원하는 조부모까지도 잠재적 이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림잡아 150만명에 6을 곱하면 900만명. 임 대표로서는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