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주 A씨는 평소 자주 이용하는 주유소와 짜고 실제 주유량보다 더 많은 유류구매 카드 승인을 받은 뒤 주유소 업자와 차액을 나눠갖다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정부가 화물차주에 지원하는 유가(油價)보조금도 부당하게 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일러에 사용되는 등유를 화물차 연료로 사용해 유가보조금을 받아온 B물류회사 역시 사법처리를 받게 됐다. 이 업체는 회사에 등록된 차량에 등유를 주유하고 마치 경유를 주유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정부가 지급하는 유가보조금을 가로챘다. 등유는 유가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업체는 1년 동안 1억원 가까운 보조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화물차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간 2조원 가까운 규모로 지급하는 유가보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 지난 2001년 도입된 유가보조금은 기름 값이 오르고 유류세율이 바뀌면서 경유·LPG 가격에 포함되는 유류세 인상분 중 일부를 화물차주에 돌려주는 제도다.

◆ ‘유령 화물차’에 稅혜택…부정 수급 적발도 어려워

정부는 화물차주의 유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유가보조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원 대상자들은 서류를 조작해 실제 주유량보다 더 많은 양을 신고해 과다한 보조금을 타내는가 하면 ‘유령 화물차’를 만들어 부당하게 지원금을 받거나 지원 대상이 아닌 연료를 주유하고 보조금을 받는 사례가 빈번하다.

유가보조금은 지방세(주행세)를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보조금 부정 수급은 결국 국민 혈세로 일부 업자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조5038억원이 지급된 화물차 유가보조금은 2013년 1조6100억원으로 5년 새 1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국토교통부가 보조금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현금 대신 ‘유류구매카드’ 사용분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조금 수급 관리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지만 불법 행위는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국토부와 각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수십만대의 화물차량에 대해 일일이 청구 서류와 실제 내역을 하나하나 대조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화물차주의 절반 이상(56%)이 유가보조금 부정수급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 대상 화물차주의 절반 정도가 ‘보조금 부정수급이 계속되더라도 유가보조금 제도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부정수급이 지속되면 보조금 제도가 폐지될 것이라고 응답한 화물차주는 40%에 불과했다.

유가보조금은 부정수급이 의심돼도 실제 적발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찬열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서울시가 부당하게 지급됐다고 적발한 유가보조금은 20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이 적발 실적은 부정수급 의심 사례 중 극히 일부분으로, 이 기간 부정수급 의심건수는 2만1623건이었지만 실제 법 위반을 밝힌 사례는 1888건으로 10%에 미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부당하게 지원되는 보조금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농업 면세유 지원도 ‘눈먼 돈’…”통합 관리 시스템 마련해야”

눈먼 돈으로 전락한 보조금 제도는 농가(農家)에 지원되는 면세유 혜택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농민들이 농기계와 비닐하우스 냉난방 연료를 사용할 때 세금을 감면받도록 농업 면세유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면세유를 농업용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고장 난 농기계에 면세유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면세유를 부정 유통하는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유성엽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4550건이었던 농업용 면세유 불법유통 적발 건수는 2013년 8695건으로 급증했다. 2011~2013년 총 적발건수는 1만8686건으로 물량으로 따지면 총 3만7769㎘, 금액으로는 384억원 규모다.

정부 관계자는 “특정 업종에 대한 비용 부담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에너지 관련 다양한 보조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대상자들은 ‘정부가 주는 돈은 못 받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에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불법 행위를 한다”며 “단속 여력이 부족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보조금 제도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줄줄 새는 세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신청부터 지급, 사후 점검 등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적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부정 수급에 따른 이익보다 처벌로 받는 손해가 더 크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