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현 조선경제i 취재본부장

핀테크 바람이 뜨겁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0월 6일 기업인 간담회에서 '핀테크'를 언급한 이후 핀테크가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다. 지난 3일 은행연합회에서 열렸던 범금융대토론회도 핀테크를 중심으로 한국 금융산업의 과제를 토의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복잡한 규제를 풀고 핀테크 벤처기업의 도전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각자 처한 입장을 바닥에 깔고 이야기했다.

우선 금감위 등 규제 당국은 기본적으로 소비자 보호와 모럴해저드 방지 관점에서 핀테크를 봤다. 대통령이 규제를 공세적으로 풀라고 하니 푸는 척은 하겠지만 나중에 책임질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형 은행의 수장(首長)들은 인터넷 뱅킹이 활성화돼 있고 전국 어디에서나 현금 인출기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의 금융 환경을 강조하면서 핀테크에 수세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핀테크 신생 기업들은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없애고 은행의 문턱을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대형 은행도 금융 당국의 문턱을 높게 느끼는데 무명 기업의 입장에선 오죽하겠는가. 또 보수적인 은행이 신생 기업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선뜻 수용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신생 기업이 규제 당국과 은행과의 접점을 마련하려고 언론에 호소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해외 핀테크 신생 기업들이 낡은 규제와 기존 금융산업의 보수성을 기회로 삼아 성공한 점을 감안하면 국내 핀테크 업체들의 반복된 규제 타령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핀테크의 진짜 무서운 측면은 기존 금융업의 뿌리인 신뢰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기존 금융업은 국가라는 신뢰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과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시시콜콜하게 금융산업에 간섭하고 규제한다. 금융산업은 규제에 대한 반대급부로 높은 진입 장벽을 받아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다.

이에 비해 핀테크는 국가 대신 국경을 넘는 디지털 신뢰 시스템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신(新)금융이다. 예를 들어 크라우드펀딩의 간판 격인 킥스타터(kickstarter. com)는 온라인 평판을, 알리페이는 알리바바의 구매자 보호(escrow) 서비스를 신뢰 시스템으로 사용한다. 또 택배 이용 등 실시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래자의 신뢰도를 계산하여 거래를 승인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사람의 일상사 데이터만 분석해도 실거래자인지 사기꾼인지를 은행원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뢰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야말로 핀테크 트렌드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요소다. 핀테크 이용자들은 이미 국가보다 소셜미디어의 평판을 더 믿고, 빅데이터가 국가보다 자신의 금융 거래를 더 잘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핀테크 서비스를 온라인 쇼핑, 여행 등 국경을 넘는 거래에 사용하면서 과세권과 규제권 등 민족국가의 거버넌스를 무력화하고 있다. 킥스타터에서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하고 직원에게 페이팔(paypal)로 월급을 지급하면 국가가 어떻게 규제하고 누구에게 세금을 매길 것인가. 그런데 한국의 핀테크 열풍은 글로벌 트렌드와 달리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작은 시장을 나눠 먹으려는 것은 아닌지 핀테크 리더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