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이나 유과(油菓)·약과 같은 우리 전통 과자는 주로 조청이나 꿀로 단맛을 내잖아요. 역시 우리 입맛에는 은은히 배어 나오는 달콤한 맛이 통하는 것 같아요."

지난해 과자 시장의 최고 인기 상품 '허니버터칩'을 개발한 정명교(53) 해태제과 연구소장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자칩을 만들려고 전 세계 감자칩 200여개를 맛봤지만 짠맛과 바비큐 맛이 대부분이었다"며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은 우리 고유의 맛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연구개발(R&D) 6개월 만에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과자 시장의 최고 인기 상품‘허니버터칩’을 개발한 해태제과 연구·마케팅 직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박강균 스낵브랜드매니저팀장, 신용목 과자개발부장, 정명교 연구소장, 김수 마케팅부장, 박시용 스낵개발팀장.

국내 감자칩 시장에서 해태제과는 오리온·농심에 밀려 20년 가까이 만년 꼴찌였다. 2012년에도 마요네즈·유채 맛의 감자칩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실패했다. 그 직후 '특명(特命)'이 떨어졌다. '시장을 뒤엎을 새로운 맛을 찾아라!'

연구원 한 명당 1400봉지씩 감자칩 먹으며 철저히 분석

신정훈 대표와 연구개발부·마케팅부서 직원 7명으로 구성된 연구·개발 전담팀(TF)을 만들고 새로운 맛 찾기에 나선 해태제과는 1년 8개월이 지난 작년 8월, '허니버터칩'을 선보였다. 그리고 편의점·대형마트에서 품귀(品貴)현상을 지금도 빚을 정도로 히트를 쳤다.

제과업체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보통 8개월~1년 정도 걸린다. 하지만 '허니버터칩'에는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느껴지는 맛과 향(香)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봉지를 뜯을 때 올라오는 고소한 맛, 그리고 입안에서 처음 느끼는 단맛, 마지막으로 약간의 짠맛이 받쳐줘야 과자에 계속 손이 가거든요."

과자 연구만 28년째인 신용목(54) 과자개발부장은 "고소한 맛이 조금만 강하면 사람들은 금세 질린다"며 "세 가지 맛의 조화를 이루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허니버터칩' 연구개발팀은 이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한 주간 개발한 시제품 맛을 보고 평가했다. 이들이 연구개발 기간 중 먹은 감자칩은 1인당 약 1400봉지. 신 부장은 "매일 오전, 오후 심지어 저녁에도 감자칩을 먹다 보니 연구원들의 입안이 다 헐었다"며 "그 결과 밥맛이 없어지고 식사량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박시용(42) 스낵개발팀장은 "과자 맛이라는 게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정도로 매우 주관적인데 여러 사람이 모두 맛있다고 느끼게끔 객관화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피 말리는 20개월 R&D… 月 매출 75억원 '대박' 탄생

결과는 '대박'이었다. '허니버터칩'이 시장에 처음 소개된 작년 8월 직후 소비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면서 주문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생산 초기, 2000~3000박스씩 만들던 '허니버터칩'의 하루 생산량이 10월부터는 1만5000박스까지 올라갔다. 김수(52) 마케팅부장은 "매년 과자 시장에 200개 가까운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한 달에 1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제품은 2~3개에 불과하다"며 "'허니버터칩'은 한 달에 75억원어치 팔리니까 '초대박' 상품인 셈"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작년 말 '허니버터칩'과 비슷한 단맛의 감자칩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박강균(46) 스낵브랜드매니저팀장은 "과자 시장에서 선두 제품이 나오면 곧바로 '미투(me too·모방)' 제품이 나오지만 한 번도 역전된 적이 없다"며 "'허니버터칩'도 '홈런볼' '맛동산' '에이스'처럼 30년 넘게 꾸준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기대했다.

해태제과 연구개발팀은 '허니버터칩'의 성공을 이어갈 다른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과자 시장에서 신제품 경쟁은 사실상 소재(素材) 싸움입니다. 꿀이나 버터가 전혀 새로운 재료는 아닌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정 소장은 "기존에 있던 재료와 제품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성공의 열쇠"라며 "지금은 일상의 모든 식품이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