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2위 게임업체인 넥슨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은 게임업계 전반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엔씨소프트 지분을 15.08% 보유한 넥슨이 지난 27일 "엔씨에 대한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가'로 변경한다"고 밝히면서 양사의 분쟁은 불가피해졌다.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과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은 서울대 공대 1년 선후배 사이이자 '스타'급 창업자이기도 해서 벤처업계 전반의 관심도 높다. 동지적 관계였던 두 사람은 왜 갈라서게 됐을까. 양쪽의 주장은 엇갈린다.

경영 불간섭 약속했나

창업자 김택진(48) 대표를 비롯한 엔씨 쪽 인사들은 "넥슨이 신의를 저버렸다"며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 엔씨는 김 대표와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47) NXC 대표 간에 경영 불간섭에 대한 사실상의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미국 게임회사 EA를 공동 인수하려던 시도가 불발된 뒤 김정주 NXC 대표가 "엔씨 경영은 계속 형(김택진 대표)이 맡으시라"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김택진 대표도 이후 임직원에게 "넥슨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지만 최대주주로서 예우하라"고 지시했다. 엔씨 황순현 전무는 "지난해 10월에도 넥슨이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공시해놓고 불과 3개월 만에 이를 뒤집은 것은 전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넥슨의 설명은 다르다. 양사가 글로벌 시장 진출과 게임 공동 개발 등에 관해 협업하자는 공감대가 있었을 뿐, 경영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약속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넥슨 고위 관계자는 "이런 공감대에 따라 '마비노기2' 개발진 200여명을 엔씨에 보내 공동 개발을 추진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며 "게임 개발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제안해도 엔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단순 투자자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엔씨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송이 사장 승진 분쟁과 무관"

엔씨가 이사 파견 등 넥슨의 요청을 거부한 채 김택진 대표의 '친정(親政)' 체제를 강화한 것이 갈등 폭발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는 양사가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지난 23일 엔씨는 정기 임원 인사에서 김 대표의 부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엔씨는 "임원 인사 전날인 22일에 넥슨이 '공시 목적을 바꾸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협상을 해볼 여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넥슨 측도 김정주 대표 등 경영진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투자 손실 수천억 봤나

넥슨은 전날 엔씨의 주가 하락을 경영 참여의 이유 중 하나로 거론했다. 넥슨은 2012년 6월 8045억원을 들여 김택진 대표의 엔씨 주식 14.68%를 인수했다. 1주당 인수 가격은 25만원이었다. 하지만 엔씨 실적이 부진하면서 작년 10월 13만원대까지 추락,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넥슨이 4000억원 가까운 투자 손실을 보게 된 셈이다.

하지만 엔씨는 "넥슨이 절대 투자 손실을 보지 않았고, 오히려 1000억원이 넘는 이득을 봤다"고 반박했다. 2012년 당시 엔씨 주식은 넥슨 일본 법인이 현지 자금으로 매입했다. 이후 엔화 가치가 40%가량 폭락했다. 이 때문에 엔씨 주식을 엔화로 환산하면 오히려 투자 수익이 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년 말부터 경영권 분쟁 조짐이 일면서 주가가 반등했다. 28일 현재 엔씨의 주가는 21만7000원. 하루만 더 상한가를 치면 넥슨이 매입한 가격인 주당 25만원에 육박한다. 넥슨도 이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장부상 이득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넥슨 관계자는 "우리가 엔씨 최대주주로서 장기적 회사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다수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양사의 분쟁은 어떻게 흘러갈까. 엔씨 김택진 대표는 이날 임원 회의에서 "많은 생각이 있지만 일단 넥슨 측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대응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정주 NXC 대표에게 전화와 이메일 등으로 현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김 대표가 귀국하면 김택진 대표를 만나 전격적으로 화해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몇 차례 얼굴을 붉히며 싸웠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형님' '동생' 하면서 금방 친해질 정도로 둘 다 특이한 성격"이라며 "적대적 인수합병(M&A)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