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은 용산전자상가의 한 CCTV 판매업체의 모습

“어린이집에서 애들 때린 사건 터지면서 감시 카메라(CCTV·폐쇄회로TV) 달고 싶다고 전화 많이 옵니다. 평소보다 서너배 늘었어요. 찾아와서 제품 보여달라는 손님도 많이 늘었어요.”

지난 23일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CCTV 골목. CCTV 판매 점포가 늘어서 있는 이곳은 전통적인 비수기인 1월인데도 가게마다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판매점 직원들은 주문을 받은 제품을 포장해 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CCTV 골목에서 22년간 장사를 해온 신현성 세이프랜드 대표는 “티비(TV)에 애가 맞는 장면이 나온 후에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설치해 달라는 주문도 늘고 있다”면서 “요즘 같은 분위기면 장사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교사의 아동 폭행사건이 폭행 장면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알려진 후 용산 전자상가 등 CCTV 전문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과거엔 CCTV가 누군가를 감시한다는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최근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을 계기로 CCTV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업계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영향, CCTV 판매 ‘불티’

이날 찾은 용산 전자상가의 CCTV 판매점들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전문설치 업체와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일반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용산전자상가의 한 CCTV 판매점에서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

세이프랜드의 신 대표는 “예년에는 12월에서 1월까지가 비수기이지만, 최근 사건 때문에 CCTV의 필요성이 알려지면서 요즘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교육시설에서 설치해 달라는 문의가 많아,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오는 손님이 평소보다 4~5배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어린이집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도 호재(好材)로 작용하고 있다. 여야 모두 법안에 찬성하고 있어 2월이나 3월에는 통과될 전망이다. 법이 시행되면 전국 3만 6000곳에 이르는 어린이집은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CCTV 업계로선 예상치 않게 대규모 수요가 발생한 셈이다.

최근 CCTV에 대한 관심은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온라인쇼핑사이트인 옥션에 따르면 이달 9일부터 22일까지 CCTV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0%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G마켓에서도 CCTV 판매가 56% 늘어났다.

이상진 미래보안산업 유통사업부 팀장은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때문에 시장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그동안 비슷한 사건으로 CCTV가 주목을 받았지만,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법 추진이 흐지부지됐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원장님들 중에는 화질 나쁜 B급 카메라 설치해 달라는 요청도”

CCTV 판매점에 따르면 최근 설치 문의를 해오는 사람 중에는 어린이집(유아원)과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문의를 해오는데, 이들 중에는 학부모와 요구 사항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용산의 한 CCTV 판매점 박모 대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들은 대부분 CCTV 설치를 원하지 않지만, 최근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설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원장님들 중에는 선명한 제품을 설치할 경우 아동학대를 하는 장면이 또렷하게 찍힐 수 있는 점을 우려해, 흐릿하게 보이는 저화질 카메라를 요구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저화질 카메라를 설치한 다음, 주변의 조명을 약간 어둡게 하면 영상을 촬영해도 무슨 동작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한 어린이집에 장착된 돔형태의 CCTV 카메라의 모습

실제 이 매장이 최근 한 유치원에 판매한 CCTV 시스템은 HD급(약 100만 화소) 카메라가 아닌 SD급(약 30만 화소) 카메라였다. SD급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화질이 HD급의 약 3분의 1 수준으로 나쁘다.

영상 보관기간도 보통 2~3개월이지만, 이 유치원은 15일까지만 보관이 되도록 해달라고 사전에 주무했다고 매장 측은 전했다.

또 다른 CCTV 판매점 주인 이모씨는 “요즘 동영상을 저장하는 1테라바이트(TB) 등 큰 용량의 하드디스크가 많이 나왔고 가격도 싸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선 대부분 500메가바이트(MB) 하드디스크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은행의 경우 CCTV 영상을 3개월 동안 보관하도록 하고 있는데, 유치원은 그런 규칙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의 CCTV 설치가 의무화하면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과 인력도 늘려야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CCTV가 설치돼 있어도 위험한 순간이나 이상(異常) 행동을 포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장비 기업 도메테크의 오지연 실장은 “어린이집이 CCTV를 설치할 때 정부가 지원하면 CCTV 영상을 실시간으로 구청과 교육청, 지역 CCTV 통합 관제망에 제공할 수 있다”면서 “CCTV의 화질 수준과 향후 운영계획 등에 대해 사전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