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사료(史料)를 활용한다. 과거의 문서나 물건에서 당시 문화와 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과거일수록 보존된 문서가 온전하지 않고 남아 있는 물건이 드물다. 과학자들은 X선(線) 기술을 활용, 유구한 지구의 역사를 읽어낸다. 부러진 뼈를 비추던 X선이'과거를 꿰뚫는 빛'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타버린 두루마리 문자 X선으로 해독

이탈리아 초소형전자공학연구소 비토 모첼라 박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신호에 "화산재 속에서 굳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서 X선으로 문자를 읽어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남부의 헤르쿨라네움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폼페이와 함께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파묻혔다. 1752년 발굴 작업 중 줄리어스 시저의 장인인 피조의 도서관에서 1000여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발견됐다. 하지만 300도가 넘는 화산재 속에서 숯처럼 딱딱하고 검게 '탄화(炭化)'된 상태였다. 억지로 펴보려고 하면 바스러지는 바람에 뚜렷한 해독 방법이 없어 250년 넘게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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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첼라 박사팀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발생한 강력한 X선으로 두루마리를 촬영했다. 기존의 X선 촬영법으로 탄화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촬영하면 얼룩덜룩한 잿덩어리로만 보인다. 연구팀은 X선이 물질에 따라 각기 다르게 꺾이는 현상을 이용하는 'X선 위상 대조 단층촬영법'을 썼다. 두루마리에는 잉크가 완전히 스며들지 않은 채 0.1㎜ 정도 솟은 형태로 굳어 있고, 탄화된 상태에서도 이런 굴곡이 남아 있기 때문.

방사광가속기의 강력한 X선은 두루마리 전체를 통과하고, 굴곡에 따라 민감하게 꺾인다. 이렇게 꺾인 X선의 궤도를 거꾸로 추적하면 두루마리의 글자를 재구성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을 거쳐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저작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모첼라 박사는 "그 당시 원본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로마 연구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 자기장 형성 시기도 파악

X선을 이용하면 수십억년을 거슬러 올라가 지구와 우주의 역사도 꿰뚫어볼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리처드 해리슨 교수는 22일 발간된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지구와 나이가 비슷한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에스켈 운석(隕石)'을 분석한 결과 지구의 자기장(磁氣場)은 45억년 전에서 10억년 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지구는 45억년 전 탄생 직후에 자기장이 완성됐다고 여겨졌다. 지구 내부에 있는 액체 금속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은 태양 방사선과 유해 물질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한다.

운석에도 독특한 자성을 가진 물질이 있어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자기장 변화를 기록한다. 해리슨 교수팀은 X선 전자현미경으로 운석을 나노미터(㎚·1나노는 10억 분의 1) 수준으로 관찰하며 자기장 기록을 읽어냈다. 그 결과 에스켈 운석의 자기장은 액체 상태였던 내부의 금속이 굳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고, 완전히 굳자 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리슨 교수는 "에스켈 운석은 지구 내부와 비슷한 성분이어서,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압축해서 보여준다"면서 "이번 연구를 통해 추산하면 지구 자기장은 지구 내부의 금속이 굳기 시작한 10억년 전에도 형성이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로 지구의 미래도 엿볼 수 있다. 운석에서 보듯이 액체와 고체가 섞여 있는 지구 내부가 완전히 굳으면 자기장이 사라져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러나 현재 지구 내부가 굳는 속도를 감안할 때, 자기장의 소멸은 수십억년 이후에 일어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