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1일 서울 마포 상수역 근처의 수제 맥주 전문점 ‘비거스(Beegers)’. 새로 뜨는 수제맥주(크래프트 비어) 7종을 취급하는 이 펍(pub)은 젊은이들로 만원이었다. 손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햄버거를 안주로 먹고 있었다.

2013년 9월 상수역 인근에 문을 연 비거스는 홍대·합정 인근에서 수제 맥주로 유명하다. 오픈한 지 1년 반이 안 됐지만, 외국인들에겐 홍대권 수제맥주 명소로 명성이 높다. 비거스란 상호는 맥주(beer)에 햄버거(Burger)를 합쳐 만들었다.

국내 수제맥주의 중심지를 꼽으라면 단연 경리단 길을 중심으로 한 서울 이태원이다. 하지만 비거스는 홍대가 주 활동 무대인 젊은 맥주 팬들에게 아지트로 자리를 잡았다.

상수역에서 5분여 정도를 걸으면 비거스가 나온다. 비거스 입구는 2층에 있지만, 눈에 확 띄도록 철판 슬레이트에 비거스 로고를 새겼다.

“한국에선 맥주에는 치킨이라고 하죠? 미국에선 맥주에는 햄버거입니다.”

석현우(31) 비거스 사장은 미국 뉴욕주(州) 핑거레이크(Finger Lakes)에서 7년을 살았다. 핑거레이크는 미국 동부의 유명 와인 산지다. 호수를 따라 와이너리 100여곳이 몰려있다. 그는 여기서 사진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석현우 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이나 워싱턴포스트(WP)에서 기자로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운명은 엉뚱한 곳에서 그를 붙잡았다고 한다.

“예전부터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와인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핑거레이크 주변 와이너리를 자주 찾았죠. ‘공부해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와인 관련 기초 강좌를 몇 개 찾아들었는데, 엉뚱하게 와인 수업 기본 과정에서 만난 맥주에 마음을 뺏겼어요.”

석현우 사장은 “그 이전까지 맥주라곤 ‘라거’ 밖에 몰랐다”고 고백했다. 비거스에서 선보이는 맥주는 색깔이 분명하다. 한국인 입맛에 맞춰 변형한 타입을 추구하지 않는다. 미국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스타일에 가깝다.

“가게를 같이 준비한 친구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햄버거와 맥주를 마셨습니다. 주방을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는데, 메뉴를 개발하기가 쉽진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주방에서 만들어 온 메뉴들을 되돌려 보냈어요.”

비거스에서는 양조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맥주 7종, 해외에서 수입한 병맥주 수십 종류를 판다. 수제맥주 7종류 가운데 라거 1종류와 헤페바이젠 1종류, 그리고 에일 맥주 4종류까지 총 6개 맥주는 경기도 가평 카브루 양조장에 레시피를 전달해 위탁 생산한다.

나머지 한 종류인 ‘칸 포터’는 대전 바이젠하우스 양조장에서 가지고 온다. 포터는 색깔이 진하고, 씁쓸함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영국 스타일 맥주를 말한다. 비거스의 칸 포터를 머금으면 스모키한 향이 코를 스치고 곧 입 안에선 중후한 느낌이 감돈다. 석현우 사장은 “좋은 맥주를 찾으러 여전히 전국을 찾아다닌다”며 “계절마다 맥주를 바꿔 변화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칸 포터’는 비거스의 야심작이다. 대전 바이젠하우스 양조장에서 위탁생산하는 칸 포터는 스모키한 향과 중후한 느낌이 특징이다.

비거스에서 파는 수제 맥주는 이름이 독특하다. ‘사랑이 필스너’, ‘볼트 헤페바이젠’, ‘미우 골든에일’, ‘토토끼끼 IPA’ 처럼 맥주 종류 앞에 사랑이·볼트·미우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 모두 석현우 사장이 키웠거나, 키우는 반려동물 이름이다.

석 사장은 “맥주가 나오는 라인을 매일 청소하는 건 물론이고, 최적의 온도에서 탄산을 관리하기 위해 맥주 전용 냉장창고를 설치했다”며 “비거스를 처음 방문하는 고객은 1만5000원을 내고 일곱 종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비거스 샘플러’가 좋다”고 말했다.

비거스 실내 디자인은 마치 공사를 덜 마친 작업실 같다. 현대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의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천장은 덕트를 자연스럽게 노출해 공장 같은 느낌도 든다. 벽에 걸린 스크린에선 외국 뮤직비디오가 끊임없이 흐른다. 종업원은 “아시안컵 같은 중요한 스포츠 경기를 틀기도 한다”고 말했다. 입구는 2층에 있지만, 눈에 확 띄도록 비거스 로고를 새겼다. 3층 난간에는 생맥주 케그(keg·맥주를 저장하는 작은 통)를 쌓아 맥주 셀러(술을 보관하는 창고)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석현우 사장은 사진 전공자답게 로고와 맥주 컵받침도 직접 디자인했다. 비거스는 이를 응용한 맥주잔과 티셔츠 등 다양한 디자인 상품도 만들어 판다.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등에 ‘비거스’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일한다.

비거스의 수제맥주 탭. 뒷부분에 맥주 전용 냉동 창고가 있어 최적의 온도에서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다. 탄산 게이지도 각 맥주별로 조절할 수 있다.

비거스는 맥주만큼이나 햄버거를 중요하게 여긴다. 석현우 사장은 “햄버거에선 패티가 가장 중요하다”며 “뉴욕 유명 버거집 ‘쉐이크쉑(Shake Shack)’ 버거의 풍미를 즐길 수 있도록 재료를 배합했다”고 말했다. 쉐이크쉑은 석현우 사장이 미국에서 살던 당시 즐겨 먹던 버거다.

비거스의 패티는 지방을 제거한 쇠고기 양지 부위를 90% 사용한다. 돼지고기 다짐육과 쇠고기 다짐육을 섞어 사용하는 여느 가게들과 다르다. 이 패티는 돼지고기 목심을 이용한 버거보다 덜 부드러울 순 있지만, 씹는 맛이 훌륭하다.

비거스만의 버거도 있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비거스트(Beegest)’ 버거가 주인공이다. 이 버거는 버섯과 치즈를 고로케처럼 튀겨 쇠고기 패티와 함께 올렸다. 표고버섯과 뮌스터 치즈가 입안에서 잘 어울린다. 철판을 여러 번 접어 만든 독특한 접시에 나와 보는 재미가 있다.

비거스의 시그니처 버거 ‘비거스트(Beegest)’. 이 버거는 버섯과 치즈를 고로케처럼 튀겨 쇠고기 패티와 함께 올렸다. 표고버섯과 뮌스터 치즈가 입안에서 잘 어울린다.

석현우 사장에게 비거스에서 맥주와 햄버거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물었다.

“비거스 맥주들은 향이 풍부해서 아주 차갑게 마시는 것보다 살짝 온도를 높여 마시는 편이 좋습니다. 맥주 이름이 복잡하다고 외울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일단 편하게 마시기만 하면 돼요. 어떤 맥주가 입맛에 맞았는지 스타일만 기억해두시면 됩니다. 그럼 이름을 잊어버려도 혀가 맛있게 마셨던 맥주를 알아차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