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범죄를 예측해 사전 차단하는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pre-crime)'이 나온다.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이 물건을 훔치기 전에 경찰이 출동해 미래의 범죄자를 체포한다. 영화 속 배경은 2054년이지만 머지않아 이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인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기계학습)'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주목해야 할 올해의 기술 분야' 중 하나로 머신러닝을 꼽았다.

머신러닝에 뛰어드는 IT 기업들

딥러닝(deep learning·심층학습)이라고도 불리는 머신러닝은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데이터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영화에서처럼 기존 범죄자와 잠재적 범죄자들의 행동 패턴, 심리 상태 등 수없이 많은 범죄 발생 요인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특정 시점·장소에서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몇 %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범죄를 사전 차단하는 미래의 치안(治安) 시스템을 다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최근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화 속 내용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은 이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독일 엘리베이터 업체 티센크루프 등 세계 수백개 기업에 머신러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티센크루프가 도입한 MS의 '애저(Azure) 머신러닝' 시스템은 엘리베이터에 달려있는 10여개의 센서를 통해 엘리베이터의 속도와 모터의 온도, 출입문 오작동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를 예측해준다. MS는 21일에는 서울에서 설명회를 열고 국내 시장에도 본격 진출한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작년 9월 방한해 국내 개발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머신러닝 기술로 집약돼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면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구글은 작년 영국의 머신러닝 관련 업체 딥마인드를 4억달러(약 4300억원)에 인수했다. 2012년 설립된 딥마인드는 전자 상거래, 게임 등에 대한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구글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는 이 분야 연구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페이스북도 이달 초 자체 개발한 머신러닝 관련 소프트웨어를 외부 기술자에게 공개하는 등 사업 영역 확장을 추진 중이다.

검색어 자동 완성 등에 이미 적용

네이버다음카카오 등 국내 기업도 최근 인공지능(AI) 기술 연구에 머신러닝을 포함하면서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쓰는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가 검색창에 첫 글자만 입력해도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찾기를 원하는 내용을 다양하게 예측해 알려준다. 예를 들어 '연'자만 쳐도 '연말정산'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등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네이버 산하 연구기관인 '네이버랩스' 김정희 수석연구원은 "단어를 부정확하게 발음해도 사용자가 실제로 말하려고 했던 단어를 예측하는 음성인식 기술 등 다양한 서비스에 머신러닝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인지(認知) 기술로 확장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현대·SK 같은 대기업도 이미 자체적으로 비즈니스 분석을 위한 머신러닝 관련 조직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사물인터넷이 대중화되면 각종 센서와 통신장치가 수집하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그럴수록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계가 스스로 학습을 해 미래를 예측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기계학습)

방대한 분량의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 컴퓨터가 데이터의 패턴을 철저히 검증하고 스스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빅데이터 기술이 한단계 더 진화한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범죄 예측 시스템도 이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