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5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현대차그룹의 마북연구소.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 개발 본부인 이곳에는 일년 내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실험실이 있다. 수소연료전지 자동차(FCV·Fuel Cell Vehicle·이하 수소차)의 심장 역할을 하는 '연료전지 시스템 평가 실험실'이다.

이날도 연구원 2~3명이 자동차 엔진 크기만 한 연료전지에 두꺼운 고압 케이블 5~6개를 꽂은 채 계기판을 보며 성능 실험에 한창이었다. 실험실 앞에는 그다음 테스트 대상인 연료전지 10여 개가 줄줄이 카트에 실려 대기하고 있었다.

수소연료전지차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화학반응시켜 만든 전기로 모터를 돌려 달리는 차다. 연료전지가 전기를 만드는 핵심 장치이기 때문에 이 실험실에서의 성패(成敗)가 차량의 성능을 좌우한다. 산소나 수소의 압력, 화학반응의 속도 등 미세한 조건에 따라 자동차의 연료 효율이 천차만별이라 많은 실험을 통해 최적의 조건을 찾는 게 관건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현대차그룹 마북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수소연료전지를 점검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공기 중에 있는 산소(酸素)와 수소를 화학반응시켜 만든 전기로 모터를 돌리는 방식이다. 이 수소연료전지는 전기차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친(親)환경차로 꼽힌다.

특히 연료전지로 10만㎞ 이상 달릴 때 이상(異常) 유무를 측정하는 내구성 평가는 6~7개월씩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연구원들은 조를 짜서 24시간 실험을 지켜본다. 이기상 환경기술센터장(전무)은 "2018년 경쟁업체가 따라오지 못하는 압도적인 기술력 격차를 보여주는 게 목표"라며 "지금 수소차 기술을 얼마나 갖추느냐가 10년 뒤 시장점유율 10~20%를 판가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차 기술력 인정받아…협력사들도 약진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한 걸음 더 진화한 친(親)환경차다. 수증기 이외에는 배출가스가 없는 데다 전기차보다 성능이 뛰어나다. 전기차는 현재 한 번 충전 때 주행거리가 150~200㎞ 남짓 하며 충전하는 데 최소 30~40분이 걸린다. 하지만 수소차는 3~5분이면 100% 충전이 가능하고 한 번 충전하면 500~600㎞ 정도를 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이미 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이다. 2013년부터 투싼 수소차를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 작년 12월에는 수소연료전지가 자동차 전문지 '워즈오토'에서 엔진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2015 10대 최고 엔진상'을 받았다. 1994년 제정된 이 상에서 수소연료전지가 뽑힌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는 2018년 투싼 후속 모델을 내놓고 세계 시장점유율 40~50% 달성이 목표다. 이기상 전무는 "우리 수소차에 부품을 공급한 주요 국내 협력업체들도 해외 자동차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한국 자동차 산업이 수소차 분야에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수소차 산업 파급 효과도 기대된다. 수소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저장 탱크, 전기 배터리와 모터, 차량 경량화를 위한 신소재 분야의 협력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 투싼 수소차 제조 과정에서 현대차는 250개 안팎의 새 협력업체를 발굴했다. 최근에는 LG화학, 코오롱·효성 등과 소재·화학 분야 공동 연구도 활발하다. 안병기 연료전지개발실장은 "수소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국내에서는 희귀 기술"이라며 "수소 경제라는 개념이 자동차업계에 도입되면서 자동차와 별 관련 없던 새 기업들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요타·혼다 등 맹추격…韓日 대접전

하지만 세계 수소차 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일본 경제조사기관인 '후지경제'는 "2013년 165억원대인 세계 수소차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32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판매량은 같은 기간 1000대 미만에서 25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12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개막한 북미(北美) 국제오토쇼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의 수소차 혈전(血戰)이 벌어졌다. 현대차 투싼에 맞서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 처음으로 수소차 '미라이(未來)'를 공개한 것이다. 차값도 약 6800만원으로 투싼(1억5000만원 안팎)보다 싸다. 한 달 만에 2년치 생산량인 약 1500대가 팔렸다. 혼다도 오토쇼에서 콘셉트 수소차를 전시했고 내년 양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GM·메르세데스 벤츠 등도 양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초 기술력과 더불어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최대 경쟁자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앞장서고 있다. 정유회사 JX에너지와 민관 합동으로 올해 주요 도시에 100개의 수소차 충전소를 설치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해 35억원이던 수소차 관련 정부 예산이 올해 20억원으로 감소해 2025년까지 충전소 200개 설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박사는 "충전소가 많아야 수소차 판매가 늘고 매출 증대가 다시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긴다"며 "정부와 관련 기업들이 공동으로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것이 유력한 대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