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공차코리아 전 대표. 현재 고문으로 경영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만화같은 얘기다.
가정주부로 출발해 7년만에 300억원을 버는 꿈같은 스토리다.
이 주부는 아직도 33세다.

작년 10월. 불과 2년만에 국내에 2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던 공차코리아가 지분의 65%를 사모투자펀드(PEF)인 유니슨캐피탈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340억원. 32세의 김여진 전 대표가 성공스토리의 주인공 대열에 합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 전 대표가 처음 공차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후 7년, 한국에서 첫 점포를 연 후 2년만의 일이었다. 불과 2년에 공차코리아는 본사가 있는 대만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형 프랜차이즈가 돼 있었다.

◆ 밀크티 사업, 공차(貢茶)를 선택한 이유는

김 전 대표가 처음 버블티(차에 타피오카 열매를 넣은 음료)를 포함한 여러 밀크티를 접한 것은 2007년이었다. 은행원인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에 살고 있던 그는 밀크티를 처음 맛본 뒤, 국내에 도입하면 잘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국내에서 커피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신선하고,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당도와 토핑 등을 선택해 골라 마실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특히 커피를 마시지 않는 어린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데다, 탄산음료에 비해 건강음료로써 매력도 커 오히려 커피전문점에 비해 더 넓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공차의 브랜드 이미지.

대만에는 공차 이외에도 유명 밀크티 브랜드가 여럿 있었다. 대만 내 밀크티 매장 규모 1위는 ‘코이카페’이고, ‘차타임’이라는 브랜드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표가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의 프랜차이즈를 냈을 때의 이미지였다. 대만이 버블티의 종주국이고, 다양한 밀크티 브랜드로 유명한 곳이라면 현지의 분위기를 물씬 내는 브랜드가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공차(貢茶)는 ‘황제에게 진상하는 귀한 차’라는 의미를 가졌고, 상표도 고풍스러운 한자로 돼 있어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공차코리아 관계자는 “커피나 다른 음료 프랜차이즈와 특별한 차이가 없는 다른 밀크티 업체에 비해 대만 브랜드의 이미지가 명확한 공차가 소비자들의 시선을 더욱 잘 이끌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대만 점포에서의 막내 경험, 성공의 밑거름이 되다

지난해 문을 연 공차코리아의 삼성동 파르나스몰 매장 전경.

2011년 공차의 국내 사업권을 따낸 뒤 그가 가장 처음 한 일은 대만의 공차 매장 취직이었다. 스물 아홉이었다. 일선 점포에 막내 직원으로 들어가는 게 크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찻잔을 닦는 허드렛일부터 배우며 차를 우려내는 방법을 익혔고, 고객 응대와 매장 운영 노하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는 공차코리아 사업 성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밀크티 사업은 김 전 대표에게 인생을 건 베팅이었다. 결혼 후부터 몇 년간 저축해 모은 전 재산에 이곳저곳에서 힘들여 끌어모은 자금을 투자했다.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해 숫자와 경영에 밝았던 호주인 남편이 영문제안서 작성과 판권 유치계약 등에서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지만, 모든 책임은 밀크티 사업에 승부를 걸기로 결심한 김 전 대표의 몫이었다.

이미 국내 대기업과 유명 외식업체 몇 곳이 사업권 유치제안서를 낸 상황에서 자금 규모도 작고, 사업경험도 없었던 어린 주부의 도전에 대만의 공차 본사가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업 제안서를 담은 이메일에는 번번이 형식적으로 ‘확인했다’는 답만 돌아왔고, 본사의 사업권 담당 책임자들도 만나기 힘들었다. 어렵사리 본사의 직원들을 만나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거의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김 전 대표가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공차의 사업권을 따낸 데는 창업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김 전 대표는 대만과 싱가포르의 모든 밀크티와 음료들을 마셔보고 각 브랜드의 장·단점과 차이 등을 면밀히 분석해 공차 본사에서 여러 차례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이메일로 이를 알리는 대신 대만에 수시로 날아가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공차의 창업자 우전화(吳振華)씨는 김 전 대표의 해박한 실무지식과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내다본 프리젠테이션에 높은 점수를 줬고, 그는 여러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창업한 이후에는 대만 본사에서 판매되는 라인업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찻잎과 타피오카 등 핵심 원료들도 본사에서 공수해 썼다. 특히 창업자 우전화씨가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아 차맛을 점검하고, 상품에 대해 계속 조언을 한 점도 브랜드 정체성 유지에 힘이 됐다.

공차코리아는 2012년 초 홍대에 1호점을 연 뒤 이내 큰 화제를 모으면서 약 1년만에 직영점포가 13개로 확대됐다. 2013년 3월 첫 가맹점이 성신여대 상권에 생긴 후 가맹점 수도 매달 빠르게 증가했다.

16일 현재 공차코리아는 전국에 277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60개 매장이 운영되는 대만과 싱가포르(63개), 홍콩(36개)은 물론 239개의 점포가 있는 중국보다도 많은 규모다.

◆ 매각 후에도 주주·고문직위 유지…‘윈-윈 매각’ 성공 사례로

김 전 대표는 지난해 지분을 매각한 뒤 12월 김의열 전 CJ푸드빌 대표에게 자리를 넘기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35%의 지분을 가진 주요주주로서 고문직함을 갖고 회사 경영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PEF 업계에서 공차코리아는 지분 매각자와 인수자가 서로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한 ‘윈-윈 매각’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점포 수가 200개를 넘어서면서 회사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김 전 대표는 지분을 매각해 거액의 수익을 거뒀고, 유니슨캐피탈은 상품 개발과 브랜드 관리에 노하우를 가진 김 전 대표와 계속 밀접한 파트너십을 유지해 업체 경영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그 동안 사업 확장 과정에서 경영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정작 다양한 제품개발에는 힘을 쏟기 어려웠다”며 “지분 매각 이후 오히려 밀크티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고문으로써 매일 공차코리아 본사로 출근하며 회사 경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유니슨캐피탈 관계자는 “새롭게 합류한 경영진들도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장비구매와 브랜드 관리, 마케팅, 재무 등에서 많은 경험을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제품 개발에서는 차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김 전 대표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새로운 역할 분담을 통해 공차코리아의 성장세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