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5'.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총출동한 이번 전시회에서 '찰떡궁합'으로 여겨지던 삼성전자구글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삼성전자는 CES에서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OS)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TV를 공개했다. 구글도 이에 맞서 일본 소니·샤프, 네덜란드 TP비전(옛 필립스)과 손잡고 안드로이드OS를 내장한 스마트TV를 대거 선보였다.

삼성과 구글은 이번 CES를 계기로 스마트TV를 비롯해 사물인터넷·스마트카 등 신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여전히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친구이면서 서로 적이 될 수도 있는 '프레너미(frienemy·키워드 참조)' 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과 구글, TV·사물인터넷·스마트카에서 대결

삼성과 구글의 대결 구도는 TV 시장에서 가장 뚜렷하다. 삼성은 자사(自社)가 9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TV 시장에서 타이젠OS를 앞세워 영향력을 확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출시하는 모든 스마트TV에 타이젠OS를 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타이젠TV를 시작으로 집 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 시장 공략도 가속할 계획이다.

삼성은 이미 갤럭시 기어나 기어핏 같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에는 타이젠OS를 쓰고 있다. 스마트폰·태블릿PC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쓰지만 새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분야에서는 삼성의 독자 OS인 타이젠을 적극적으로 밀겠다는 뜻이다.

삼성의 '변심'을 파악한 구글도 즉각 반격했다. 스마트TV 사업은 삼성 대신 일본과 유럽 업체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소니와 협력해 '구글캐스트' 기술이 내장된 스피커도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캐스트는 스마트폰·태블릿PC 등에 저장된 음악을 TV나 외부 스피커를 통해 재생하는 기술이다. 게다가 삼성과 직접 맞부딪치는 하드웨어 시장에도 진출했다. 구글은 실내 온도 조절 장치를 만드는 네스트랩스를 32억달러에 인수해 사물인터넷 사업을 하고 있다. 네스트의 온도 조절기는 기능을 조금만 보완하면 집 안의 모든 가전제품을 조절하는 장치로도 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신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는 스마트카(smart car) 시장에서는 서로 완전히 진영을 달리한 채 경쟁한다. 구글은 작년 '오픈 자동차 연맹(OAA)'이란 단체를 결성했다. GM·도요타·혼다·닛산 등 자동차 업체와 LG전자·파나소닉 등 전자업체들과 함께 스마트카를 공동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는 삼성이 빠져 있다. 대신 삼성은 타이젠OS를 기반으로 스마트카를 개발하는 '오토모티브 그레이드 리눅스(AGL)'란 단체에 참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텔·후지쓰·히타치·NEC 등 전자업체와 현대차·재규어 같은 자동차 업체가 가입돼 있다. 구글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았다.

스마트폰 사업은 더 긴밀해져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양사의 이런 경쟁 구도를 보기 어렵다. 작년 1월 삼성전자와 구글은 향후 10년간 양사가 보유한 기존 특허와 앞으로 출원할 특허까지 서로 자유롭게 사용하는 '크로스 라이선스(특허 공유)' 계약을 했다. 이를 통해 갤럭시 스마트폰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결속력을 높이고 세계시장에서 1위 자리를 굳건히 하겠다는 것이다.

양사는 본래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애플 아이폰을 꺾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 24.5%(작년 3분기 기준)의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가 됐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OS 시장점유율 83.9%인 독보적 1위 업체다.

양사는 애플이 제기한 스마트폰 특허 소송에도 공동 대응하고 있다. 구글의 히로시 록하이머 부사장은 작년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안드로이드는 애플 운영체제를 베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이 핵심인 안드로이드 진영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선 것이다.

양사의 '프레너미' 관계는 이 상태로 유지될 수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삼성전자와 구글이 스마트TV 소프트웨어를 시작으로 경쟁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소프트웨어학)도 "삼성과 구글은 앞으로 협력보다 경쟁의 관계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삼성이 경쟁 관계인 다른 업체들과도 폭넓게 협력해야 구글과의 경쟁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레너미(Frienemy)

친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프렌드(friend)'와 적(敵)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결합해 만든 단어. 한 쪽에서는 서로 협력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뜻한다. 최근 IT(정보기술) 업계는 TV, 스마트폰, 사물인터넷, 스마트카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면서 특정 사업에서는 서로 협력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쟁하는 프레너미 관계가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