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핀테크(FinTech) 열풍에 금융위원회도 내년 중점 추진사업중 하나로 핀테크 산업의 육성을 꼽았다. 핀테크 관련 규제를 완화해 핀테크를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핀테크 산업이 더디게 발전하는 이유는 각종 규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규제의 양(量)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법률에 없는 구두·행정지도가 많고 포괄적인 금지 규정 때문에 예측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안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기조가 규제완화 일변도로 흐를 경우 사고 발생 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러한 우려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핀테크산업 육성의 걸림돌을 과감하게 풀되 사고 발생시 해당 업체의 책임을 엄격히 물 수 있는 소비자보호 시스템을 만들고, 금융위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은행 등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핀테크 관련 소관 부처의 감독시대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실명제법·금산분리가 최대 과제

핀테크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금융실명법과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한 금산분리가 대표적이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비대면 본인인증을 금지하고 있어 처음 금융거래를 할 때는 반드시 금융기관 창구를 방문해 직원에게 실명 확인을 받아야 한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핀테크 기업들이 활발하게 창업하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는 매우 뒤떨어져 있다”며 “비대면으로 본인인증을 금지한 게 핀테크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인 규제”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오프라인 거래를 전제로 한 현재의 실명 확인방법을 내년에 개선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대면 실명확인을 전면적으로 허용할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산분리도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과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인 GM이나 BMW는 각각 ‘알리뱅크’와 ‘BMW뱅크’라는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해 자동차금융 등에 특화해 운영 중이다. 일본도 2000년에 ‘새로운 형태의 은행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20% 이상 소유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은 4%에 불과하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는 2009년 9%로 완화됐으나 올 2월 다시 강화됐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보유지분 한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인터넷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면서도 “(금산분리 완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법과 금산분리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들도 많다. 미국 등 선진국은 명확하게 금지되지 않는 한 새로운 사업이 허용되지만 우리나라는 포괄적인 금지 규정이 많고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이 사실상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은 민간 기업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는데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보안사항을 사전에 지정하는 방식이어서 기술 발전이 뒤처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 “규제완화 필요해도 보안이 우선”…규제공백 우려도 해소해야

구글, 아마존, 알리페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핀테크 사업에 뛰어들자 우리도 빨리 규제를 완화해 관련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규제완화로 핀테크 산업 규모가 커진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안을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핀테크 산업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한해 약 3조원의 신용카드 부정 사용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보안 솔루션 제공업체인 RSA에 따르면 올해 신용카드 부정사용금액은 29억달러(약 3조2000억원)로 추산되고 이 금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8년엔 64억달러(약 7조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여신금융협회 조사연구센터 관계자는 “온라인거래가 증가하면서 비대면 거래가 늘었고 해킹도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부정사용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정혁 한국은행 전자금융팀장도 “애플의 운영 체제인 iOS나 구글 운영 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악성코드가 급속히 증가하고 현재 5초마다 모바일 단말기 분실사고가 일어나고 있어 모바일 금융서비스와 관련한 보안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전자금융 서비스와 관련한 보안 심의를 점차 민간으로 이양하되 향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모든 기술에 대해 보안성을 심의하면 심의 기간이 길어지고 심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핀테크 관련 부처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예를 들어 모바일 지급 서비스는 은행, 이동통신사업자, 전자기급결제 서비스 제공자, 지급결제시스템 운영자 등이 연관돼 있는데 이들의 소관 부처는 금융위,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은행 등이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급결제 서비스의 제공기관과 제공방식이 복잡해지면서 관련 감독당국의 역할이 모호해지고 기관간 책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끼리의 소통을 물론 감독당국 간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