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9월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IPO(기업공개) 기록을 세운 중국 최대 인터넷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상장 때 주식 품귀 현상이 일어나 국내 기관투자자 중엔 누구도 알리바바 주식을 배정받지 못했지만, 해외 연기금 중엔 이 회사가 상장되기 한참 전인 2011년에 이미 5억5000만달러(약 6113억원)를 투자했다가 대박 난 곳이 있다. 바로 캐나다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캐나다연금투자이사회(CPPIB)'다.

CPPIB가 알리바바 투자를 감행했던 3년 전, 약 320억달러 수준이었던 이 회사의 경제적 가치는 현재 2700억달러로 8.5배 뛰었다. CPPIB가 알리바바 주식 보유 수 등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CPPIB 역시 회사 가치 상승분만큼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하면 투자 수익은 4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갖춘 캐나다 연금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1.9%로, 전 세계 국가연금 중 수익률 최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캐나다 연기금 CPPIB는 중국 인터넷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상장하기 전에 6000억원가량을 투자해, 현재 7배가 넘는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진은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상장을 알리는 모습(왼쪽).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은 마이클 잭슨의 팝송, 클래식 등 25만여곡의 지식재산권을 사모은 세계 최대 음원 보유자다.

#2. 세계 투자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팝의 황제'는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이라는 얘기가 있다. 알 켈리가 부른 'I Believe I Can Fly',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마돈나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곡 등 25만여 곡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사 모아 세계 최대 음원 보유자가 됐기 때문이다. ABP는 라디오에서 이 곡들이 흘러나올 때마다, 또 개개인의 스마트폰에 해당 곡이 저장될 때마다 차곡차곡 수익금을 쌓는다. 투자 대상이 비단 음원뿐 아니라 영화·미술·문학작품·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서, ABP는 이런 문화 대체투자 분야에서만 연 10%의 수익을 올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1.2%에 달한다.

대체투자로 펄펄 나는 해외 연기금

틀을 깨고 새로운 투자처로 과감히 뛰어든 세계 연기금들이 연간 10%가 넘는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민연금처럼 채권 투자에 안주하는 대신,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에 공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AQR의 클리프 애즈니스 대표는 "현실적으로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통계를 헤아릴 수 있는 지난 112년 새 최저치인 연(年) 2.4%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가능한 모든 자산에 분산 투자해 수익률을 5%까지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세우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채권 위주의 안전주의 투자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20개 글로벌 연기금(국가연금·직역연금·국부펀드)의 자산 배분 현황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의 59%를 채권에 묻어뒀고, 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은 31%와 9% 수준이었다. 반면 수익률 1등인 CPPIB는 주식에 34%, 채권에 31%, 대체투자에 35% 비중을 두고 있다. 지난해 무려 16.2%의 투자수익률을 낸 미국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는 더 과감하다. 주식·채권·대체투자 비중이 54%· 20%·26%로 채권보다 대체투자에 더 많은 돈을 넣어뒀다. 투자수익률이 국민연금보다도 나쁜 일본 GPIF만이 국민연금보다 높은 채권 투자 비중(67%)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

국민연금의 이 같은 채권 일변도의 '안전 제일주의'가 위기 때는 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 ~2010년, 다른 글로벌 연기금들이 마이너스 수익을 낼 때 국민연금은 10.8%와 10.6%의 깜짝 수익률을 기록했다.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채권가치가 상승하는데, 금리가 뚝뚝 떨어지던 시점에 채권에 돈을 묻어둔 덕을 본 것이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기관이 무엇보다 돈을 잃어서야 하겠느냐는 목소리도 이때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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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늘 예기치 못한 금융위기를 기대하며 저위험·저수익 투자 기법만 고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캘퍼스 같은 해외 연기금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 투자 비중을 50% 선보다 줄이지 않고 유지했다. 그 덕분에 글로벌 경기 회복기에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다시 하위권으로 처졌다. 국민연금은 10년 이상을 바라보는 장기자금인 만큼, 변동성에 따른 위험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자금처럼 취급해 채권에만 몰방해선 안 된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연금운용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연금 역시 60%에 달하는 채권 투자 비중을 20~3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시뮬레이션했지만, 기금운용위원회 통과가 난망해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연구위원은 "'연못 속 고래'로 표현되는 협소한 국내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를 지금보다 가속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