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석유가 바닥날 것입니다. 하지만 기금의 수익은 국민에게 계속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적당한 리스크하에 기금의 구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노르웨이 정부연금기금(GPF)은 홈페이지에서 기금의 운용 목표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을 당장 쓰지 않고 잘 굴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조성된 이 기금은 전체 자산의 60%를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해 지난해 15.9%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금뿐 아니라 대부분의 해외 공적 연기금은 수익률 극대화를 명확한 목표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연못 속 고래'처럼 여전히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그 결과는 결국 수익률 성적표로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4.2% 수익을 올려 세계 꼴찌 수익률 (세계 6대 연기금 기준)을 기록했다. 투자 기관으로서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처럼 저조한 실적의 근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전문성, 독립성, 장기 투자 원칙 등 세 가지 요소의 부재를 꼽고 있다.

전문성 부족한 기금운용위원회

우선 국민연금의 자산을 어디에 투자할지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금운용위원회부터 전문성이 떨어진다. 위원회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부위원 5명, 가입자 대표 격인 민간위원 14명으로 이뤄져 있다. 민간위원들은 노동계 대표 3명, 사용자 대표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4명, 시민단체 2명, 금융 전문가 2명 등이다. 연금 가입자 대표가 직접 운용에 참여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투자 전문가 출신은 드물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운용위원들의 대표성만 강조한 결과 책임감은 높지만 전문성은 떨어지는 위원회가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집행권을 꽉 쥐고 있다"며 "비전문 위원들을 투자 전문가들로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자리 잡은 국민연금은 내년에 자산 규모가 5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연수익률이 4.2%에 불과해 세계 주요 연기금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수익성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지난 12일 열린 제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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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본부 직원 1인당 운용 규모가 해외에 비해 턱없이 큰 것도 문제다. 현재 국민연금 운용본부에서는 기금운용역 163명이 1인당 3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관리하고 있다. 선진국 연기금이 1인당 1조원 이하를 운용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또한 운용역 전원이 3년마다 계약 갱신을 해야 하는 계약직이다 보니 짊어진 책임에 비해 신분 안정성이 떨어진다.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 성과 위주로 업무를 진행할 개연성이 높다.

2016년으로 예정된 전주 이전도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여대 이준행 교수는 "국민연금공단이 서울에서 먼 전주로 이전하면 그나마 전문성을 갖춘 현재 좋은 인력들이 시중 자산운용사로 상당수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외투자 90조원, 해외 직원은 9명

국민연금에 대한 각계각층의 과도한 개입과 간섭도 수익률 제고에 전념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미래를 위해 납부한 적립금인데도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이 돈을 다른 용도로 쓰려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가령 박근혜 정부 초기 기초노령연금의 재원 조달 방안이 마땅치 않자 국민연금과 통합하자는 안이 나왔고,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최근 출산율 제고를 위해 국민연금을 임대주택사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정부가 국민연금에 금리가 낮은 통안증권을 떠안기거나 벤처펀드 투자를 유도하는 등 정권 입맛에 맞춰 기금 운용 방향을 흔들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기금운용본부 내에 인사와 예산 독립성이 없는 것도 운신 폭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규모는 주식·채권·대체 투자 등을 합쳐 2014년 현재 90조원에 이르지만, 해외 상주 인력은 뉴욕과 런던 사무소 총 9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연금 전문가는 "국민연금의 징수와 급여는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업무인 반면 운용은 전문성과 수익성이 중요한 업무인데 두 조직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보니 기금운용본부가 '수익률 제고'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매진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