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原子爐)라고 하면 흔히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자력발전소를 떠올리기 쉽다. 원전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지만, 막상 내 주변에 두기는 싫은 존재다. 그러나 당당하게 도심에 자리 잡고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의료용 물질을 생산하거나 산업에 도움을 주는 원자로도 있다. 수출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바로 연구용 원자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246기의 연구용 원자로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은 대전 원자력연구원에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가동 중이다.

원자로의 기본 원리는 발전용이나 연구용이나 동일하다. 우라늄을 원자로에서 태우면 열과 중성자가 쏟아져 나온다. 발전용 원자로는 열을 이용해 물을 데우고, 나오는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반면 연구용 원자로는 중성자를 사용한다. 하나로에서는 초당 1㎤의 공간에 2000조개의 중성자가 발생한다.

연구용 원자로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의료 분야다. 요오드·몰리브덴 등 안정된 물질을 하나로에 넣으면 중성자와 충돌하면서 방사능을 내는 동위원소로 변한다. 동위원소는 암 진단과 치료에 쓰인다. 몰리브덴 동위원소를 마시면 암세포에 달라붙는데, 이들이 내뿜는 방사능을 자기공명영상(MRI) 등으로 관찰하면 암 발생 여부를 알 수 있다. 방사선 암 치료는 다양한 동위원소가 특정한 암세포에만 달라붙는 점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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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구원의 이충성 하나로운영부장은 "요오드 동위원소는 갑상샘 암세포, 이트륨 동위원소는 간 암세포에만 집중적으로 달라붙는다"면서 "암세포에 달라붙은 동위원소가 방사선을 내뿜으면서 암세포를 죽인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까지 12만5000여명의 환자가 하나로에서 생산된 암 진단 및 치료용 동위원소를 사용했다. 산업용 동위원소는 선박이나 항공기의 비파괴 검사에 사용된다. 이리듐 동위원소가 내뿜는 방사선을 이용하면 제품의 정확한 크기와 두께를 측정하는 것은 물론 내부의 미세한 균열까지 파악할 수 있다.

전기자동차나 고속철도 등에 사용되는 대용량 전력용 반도체도 하나로에서 만들어진다.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는 실리콘은 원래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화학물질에 실리콘을 담가 전기가 통하게 하는데 이를 '도핑'이라고 한다. 그러나 화학적 도핑은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기에는 불량률이 높다. 이를 보완한 것이 중성자 도핑이다. 하나로에 실리콘을 넣으면 중성자와 충돌하면서 전기가 통하게 변하는데, 품질 면에서 화학적 도핑보다 훨씬 뛰어나다. 원자력연구원은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과 중성자 도핑만을 담당할 연구용 원자로를 2017년까지 부산 기장에 건설할 계획이다.

연구원은 2011년 하나로에 '냉(冷)중성자 연구 시설'을 추가했다. 원자로에서 나온 중성자는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열(熱)중성자'로 불린다. 열중성자는 물질에 부딪히면 에너지를 잃게 되는데, 이렇게 에너지를 잃고 속도가 느려진 중성자가 냉중성자다. 하나로에서는 열중성자를 영하 253도의 액체수소에 통과시켜 냉중성자를 얻는다. 냉중성자는 단백질이나 세포막 등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현재 냉중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독일·미국·호주 등 8개국뿐이다.

연구용 원자로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수출상품이다. 한국은 이미 2009년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했고, 지난달 네덜란드와 연구용 원자로(오이스터·225억원) 공급계약을 맺었다. 연구용 원자로는 크기에 따라 1기당 200억~5500억원이 든다. 이 부장은 "전 세계 연구용 원자로의 20%가량이 노후해 교체가 임박한 상황"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아제르바이잔 등에 진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