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치매와 암 극복을 위한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세계적인 행사도 잇따라 개최했다. 하지만 전 국민의 과학 소양을 높이기 위한 문·이과 통합형 교과과정 개편이 오히려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는 14일 온라인·모바일 투표와 전문가 심의를 종합해 올해 대한민국 10대 과학기술 뉴스를 선정·발표했다. 10대 뉴스는 다음과 같다.

치매세포 배양하고 암세포 태워죽여

미 하버드대 김두연 교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김영혜 박사 연구진은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인간 신경 줄기세포에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돌연변이 유전자를 삽입해 배양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뇌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것. 수많은 약물을 동시에 치매 세포에 시험할 수 있어 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로 주목받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 연구단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공동 연구진은 젓가락 모양의 수술 로봇을 개발했다. 의사의 손을 따라 움직이며 뇌 깊숙한 곳의 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 로봇이다. 코를 통해 뇌로 들어가기 때문에 두개골을 절개할 필요가 없어 안전하고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려대 이지원 교수(화공생명공학과)와 김광명 KIST 박사는 7월 신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나노입자 치료법을 발표했다. 금(金) 나노입자가 암세포에만 달라붙으면 그곳에 레이저를 쪼인다. 이러면 나노입자에서 열이 발생해 암세포가 죽는다.

5배 빠른 와이파이 개발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황성우 박사와 성균관대 황동목 교수(신소재공학부)는 4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탄소물질 그래핀을 대(大)면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처럼 연결된 판형 물질. 철보다 200배 강하고 전기는 구리보다 100배 더 잘 통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연구팀은 게르마늄 기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그래핀을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냈다.

LG이노텍은 희귀 광물 자원인 희토류를 쓰지 않는 차량용 듀얼클러치 변속기(DCT) 모터를 개발했다. DCT 모터는 차량 주행 상황에 따라 기어를 변경해주는 핵심 부품이다. 일반 자동 변속기보다 12%의 연비 개선 효과가 있어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기존 DCT 모터에는 자성을 띠는 네오디뮴(Nd)과 디스프로슘(Dy) 등 희토류가 들어갔다. LG이노텍은 모터 구조 설계 방식을 바꿔 희토류 없이 DCT 모터를 만들었다. 내년 초부터 멕시코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간다.

삼성전자는 현재 쓰는 것보다 5배 이상 빠른 차세대 와이파이(무선랜)와 첨단 반도체 V낸드 플래시메모리를 이용한 데이터저장장치(SSD)를 개발했다. 차세대 와이파이는 초고주파 대역을 이용해 1기가바이트 용량의 영화 파일을 단 3초에 주고받을 수 있다. V낸드 플래시메모리는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인 '셀'을 수직으로 쌓아올려 용량을 크게 늘린 것이 특징이다.

수학·ICT 올림픽 잇따라 개최

4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수학자대회가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됐다.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는 120여개국, 5000여명의 수학자가 참여한 이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기조 강연 무대에 올랐다. 미 스탠퍼드대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는 서울 대회에서 여성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받았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는 10월 20일부터 11월 7일까지 193개국 정부 대표단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한국이 제안한 10.2채널 오디오 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됐고, ITU 표준화 총국장에 이재섭 KAIST 연구위원이 당선되는 성과를 올렸다.

올 2월 멀리 남극에서는 장보고과학기지가 준공됐다. 1988년 세종과학기지가 문을 연 지 26년 만에 두 번째 남극 기지가 들어선 것.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남극에 2개 이상의 상설 기지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마냥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학계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에 크게 반발했다. 교육부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2018년부터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배우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과정 개편 추진 과정에서 과학자가 배제되고 과학 과목 수업 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자 과학기술 단체들은 '하향 평준화'라며 반대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발에 과학기술계 인사의 참여와 균형 잡힌 과목 배정을 약속했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