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보험사의 영업담당 B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고함치는 '호통 리더십'으로 악명이 높았다. 얼마 전 "이딴 식으로 하면서 월급 받아가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라고 소리지르는 B부장에게 옆 부서 부장이 "직원들 좀 살살 다뤄라"고 조언하자 그는 웃으면서 "우리 부원들은 내가 다 잘되라는 뜻으로 다그치는 걸 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B부장의 자신감은 착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며칠 후 부원들이 인사 담당 부서에 그가 호통치는 소리를 담은 녹음 파일과 '모욕적인 언사를 더는 참기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결국 B부장은 대기 발령을 받고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보험사 관계자는 "욕을 하지도 않았는데 인사 조치를 당한 걸 보면 처벌 잣대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듯하다. 직원들 사이에 '아랫사람에게 욕설은 물론이고 소리 지르거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더라도 처벌을 받는 모양이니 조심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C은행에서도 최근 한 지점장이 대기 발령을 받았다. 같은 지점에서 일해온 차장이 인사 담당 부서에 그동안 저장한 지점장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제출한 후 내려진 조치다. 징계성 인사엔 '너는 차장이 계장보다 못하냐' '정신과 치료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은 카카오톡 '증거 자료'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의 막말 사건,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등 윗사람의 모욕적 언사가 외부로 노출돼 조직의 평판을 실추시키는 사례가 빈발하자, 기업들이 상사가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이른바 '힘희롱(power harassment)' 문제에 대해 한층 더한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임원은 "성(性)희롱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반면 아랫사람의 인격을 모독하고 면박을 주는 '힘희롱'은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런 행태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관련 징계 수위가 높아지고 잣대가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사의 괴롭힘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점점 많은 기업이 힘희롱을 타파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는 중이다. 휴대폰 녹음, 카카오톡 메시지 저장 등 직장 상사가 괴롭힌다는 증거를 저장하기 쉬워진 점도 기업들이 '부하 괴롭힘 철퇴령'을 내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신한은행은 매월 '응답하라 S·E·S(Shinhan Ethical Standards)'라는 이름의 동영상을 만들어 엘리베이터 영상, 사내 전산망 등으로 공유한다. 최근 공개된 동영상엔 지점의 고객들이 보는 앞에서 윗사람이 부하 직원에게 "야! 너! 아까 말한 거 어떻게 됐어!"라고 다그치는 모습이 '해서는 안 될 언사'의 사례로 담겼다.

기업은행은 상사의 언어폭력과 모욕적 언행 등을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을 만들어 '못된 윗사람'에 대한 신고를 받고, 필요할 경우 인사 조치를 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폭언은 해사(害社) 행위'라고 규정한 후 지속적으로 언어 순화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삼성 가이드라인엔 "한 게 뭐 있다고 밥 먹고 있어. 밥이 넘어가느냐" 같은 말이 폭언 사례로 올라 있다.

현대해상은 2015년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만든 행동 가이드라인 '하이웨이(Hi Way)'에 '비속어·욕설을 사용하지 않는다' '큰 실패를 작게 타이른다' 등의 지침을 넣었다.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팽배한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파워하라'(power harassment의 줄임말)가 뿌리 뽑아야 할 사회적 병폐로 인식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직접 신고를 받아 조사하고, 직장 상사가 괴롭혀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을 하면 이를 산재로 인정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도 여럿 나왔다.

경희대 경영대학원 이동규 교수는 "한국의 많은 기업은 '고객은 왕'이라고 하면서 직원을 종처럼 여기는 측면이 있지만 선진국 중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사회적 범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욕적 언사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저하로 이어져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