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가 떠난 K-OTC시장이 또다른 삼성 계열사인 삼성메디슨 덕에 선방하고 있다. K-OTC는 금융투자협회가 개설해 놓은 장외 주식시장이다. 삼성메디슨의 일거래대금은 현재 전체 거래대금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메디슨의 주식 거래량이 늘자 삼성SDS의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잠시 침체했던 K-OTC시장도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 삼성메디슨 거래대금, 최근 5일간 네 배 증가

27일 K-OTC시장의 총 거래대금은 32억4323만원을 기록했다. 이 중 삼성메디슨의 일 거래대금은 25억2947만원. 거래대금 상위 2위 업체인 현대로지스틱(2억1916만원)보다 10배도 더 많은 규모다.

삼성메디슨의 거래량이 늘자 K-OTC시장 자체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4일 삼성SDS가 떠나 유가증권시장에 상장 된 뒤 급감했던 K-OTC시장 거래대금은 다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14일 삼성SDS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날, K-OTC시장 전체의 거래대금은 전날(53억6521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20억6690만원으로 급감했었다. 삼성SDS의 거래대금이 당시 시장 전체 거래대금의 60~70%에 육박했던 만큼 빈 자리도 컸다. 한 때 전체 거래대금이 78억원에 달한 적도 있었던 K-OTC시장이 휘청대자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커졌다.

삼성 SDS의 상장 이후 K-OTC시장의 일 거래대금은 9억원 수준까지 감소하기도 했지만, 최근 5일간 삼성메디슨의 거래대금 증가에 힘입어 250% 가까이 증가했다. 이 기간 삼성메디슨의 거래대금은 6억원에서 25억원으로 4배 넘게 늘었다.

◆ 삼성전자 의료 사업 기대감…삼성메디슨 상장 예측 어려워

최근 삼성메디슨의 장외주식 거래량이 급증한 것은 삼성전자(005930)가 의료 기기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관련 있다. 향후 삼성메디슨이 그룹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것.

지난 25일 삼성전자는 해외 의료기기 업체인 써모피셔사이언티픽과 체외 진단 분야 사업협력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 SAMI를 공개하며 웨어러블(몸에 착용할 수 있는) 기기와 연동된 헬스케어 서비스에 시동을 걸기도 했다.

그렇다면 삼성메디슨은 삼성SDS와 달리 K-OTC시장에 계속 남아 시장 활성화를 주도하게 될까? 삼성메디슨의 상장 추진 가능성에 대해 의료·증권 업계는 갑론을박하고 있다. 삼성메디슨측에서도 상장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고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전했다.

한때 증권 업계에서는 삼성메디슨이 삼성전자에 합병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삼성메디슨이 직접 상장이나 합병을 통해 우회 상장해 K-OTC를 나갈 지 여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K-OTC 문턱 낮춰 우량 종목 편입 유도

K-OTC시장이 삼성메디슨 덕에 선방하고 있지만 금융투자협회의 고민은 여전하다. 과거 삼성SDS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특정 종목에 대한 쏠림 현상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만약 삼성메디슨이 떠나게 될 경우 시장 전체가 침체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 전체의 시황이 특정 종목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투자협회는 우량 종목을 편입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협회는 다음달 중순 K-OTC시장 거래종목 지정 요건을 일부 완화할 계획이다. 현재 협회는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며 ▲연 매출액이 5억원이고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아니며 ▲주식 공모(유상증자) 경험이 있는 기업에 한해 K-OTC 편입 요건을 부여했다.

이 중 주식 공모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은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와 관련 있다. 공모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 기업은 추후 주주배정이나 3자배정 증자 등 사모를 할 때도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지게 된다. K-OTC시장 편입은 공모를 하는 것과 같다. K-OTC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면 모집 매출, 즉 공모 실적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이들 업체엔 향후 사모 유상증자를 할 때마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이미 이전에 공모 증자를 한 적이 있는 기업이라면 K-OTC시장에 편입된다 해서 추가로 공시 의무가 생기는 게 아니지만, 공모 경험이 없는 기업이 편입된다면 공시 의무를 져야 하는 불편이 새로 생긴다.

금융투자협회에서는 이 요건을 일부 수정할 계획이다. 전에 주식을 공모했던 실적이 없더라도 ‘향후 주주배정이나 3자배정 증자 등 사모를 할 때마다 금융감독원에 공시하겠다’는 조항에 동의만 한다면 K-OTC시장 편입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다.

현재 금융투자협회는 LG CNS, 현대엔지니어링, 씨트리 등 우량 기업을 대상으로 K-OTC 편입 의사를 묻고 있다. 재무 구조가 탄탄한 기업들이 추가로 시장에 들어온다면 거래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협회측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