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과 화학 자회사들을 한화(000880)에 넘긴다. 매각 예정일자가 내년 6월로 잡혀 있고, 언아웃(earn-out) 조항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서둘러 결정한 사안인 것으로 추정된다. 언아웃이란 정확한 매각 가격을 정하지 않고, 추후 매각 예정 기업의 실적을 보고 추가적으로 매각 대금을 수령할 수 있는 조건을 뜻한다. 매각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사용하는, 해외에서는 보편적인 수단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향후 시나리오를 어느 정도는 예측해 둬야 예상치 못한 충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 실제 삼성테크윈은 삼성그룹이 매각을 선택했다는 점 하나 때문에 26일 장중 하한가에서 거래 중이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예상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SDS를 팔까? "아닐 것"

전날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삼성SDS 주식 일부를 장내 매도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삼성그룹의 고위 관계자가 직접 밝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SDS는 전날 장초반 한때 7% 정도 하락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매도는 현재는 불가능하다. 내년 5월까지 보호예수가 걸려 있기 때문. 하지만 그 이후엔 주식 처분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는 삼성SDS 주식을 직접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SDS 주가를 지탱시키는 힘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대감인데, 주식을 직접 팔았다간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우 나올 수 있는 또하나의 시나리오가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합병이다. 만약 두 회사를 합친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주식 처분은 훨씬 용이해진다. 삼성SDS가 상장을 앞두고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IR)를 할 때도 삼성SDS측은 "삼성SDS가 고평가됐다는 얘기가 많은데, 삼성SDS는 삼성전자와 합쳐서 기업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투자자문사를 설립한 한 증권업계 전문가는 "이재용 부회장의 주식 처분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면서 "만약 팔더라도 아주 소액의 지분만 처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설

최근 주식시장 일각에서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물산의 합병설이 돌았다. 두 회사는 사업 성격상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데다 지배구조상 중요성이 크다.

현재 삼성그룹은 오너 일가가 지배구조상에서 벗어나 있는 삼성SDS, 제일모직 주식이 많은 반면, 대표 주력 회사인 삼성전자 주식은 적은 편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한다면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두 회사의 합병설을 지지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제일모직은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데, 삼성물산과 합병하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다"면서 "물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주식보다는 적지만, 삼성SDS와 삼성전자가 합병한다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보유주식은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아지게 된다"고 전했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에서 시작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법인, 그리고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게 된다.

◆ 현금 생긴 삼성물산은 어디에 돈 쓸까

삼성물산은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주식 처분으로 약 4740억원을 현금화했다. 이 자금은 아마도 지배구조 개편에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물산은 돈이 급한 상황이 아니다. 만약 현금화해서 M&A 등에 쓸 생각이었다면 아마도 삼성SDS, 제일모직 공모 때 신주를 제공했을 것이란 게 일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삼성물산은 현금화한 돈을 어디에 투자할까. 현재까지는 삼성생명(032830)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가져오는데 쓸 확률이 크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금산분리법상 언젠가는 팔아야 하는 탓이다. 주식시장 일각에서는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 등의 인수대금을 한화생명 지분으로 지불한다는 설이 돌았는데, 이 같은 관측의 연장선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한화생명 지분을 받는다면 그 지분을 그대로 삼성생명에 넘기고 다른 계열사 주식을 받아오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