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최대인 2조원 규모의 빅딜에 합의했다. 삼성그룹의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을 한화그룹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삼성그룹이 주요 계열사를 국내 다른 대기업에 넘기는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사업매각으로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사진) 중심의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고, 한화그룹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제조업 부문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삼성은 26일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을 1조9000억원에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한화도 같은 내용의 자료를 공개, 삼성의 4개 계열사 인수를 공식 확인했다.

프랑스 토탈과 합작사인 삼성토탈을 갖고 있는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가 1조600억원에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에 매각하고, 삼성탈레스를 지배하는 삼성테크윈 지분 32.6%는 8400억원에 ㈜한화로 넘어간다.

이번 거래로 인해 삼성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수 있게 됐다. 한화도 석유화학산업과 방위산업 1위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제조업 부문의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된 것도 의미가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업매각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후계구도를 위한 사업 구조조정에 다시 불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삼성사옥 전경.

지난해 하반기 제일모직에서 시작된 그룹 사업재편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제일모직의 직물·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고, 남은 소재산업은 삼성SDI와 합병했다. 이후 삼성에버랜드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삼성에버랜드의 건물관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하고 급식사업을 삼성웰스토리로 분리했다. 삼성SNS는 삼성SDS와 합병하고,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미국 코닝사에 매각했다.

뒤이어 올초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이 결정됐고, 삼성SDS와 제일모직의 상장 발표가 이어졌다. 삼성SDS는 14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성공했고, 제일모직은 다음 달 18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다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결정은 주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매각이 비주력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이번에 한화그룹으로 넘어가는 석유화학부문과 방위산업부문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삼성그룹에선 사업재편을 고민해왔다. 그룹의 역량을 전자, 금융, 건설·플랜트 부문에 집중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석유화학, 방위산업 부문을 떼어내는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다.

당초 삼성은 석유화학사업을 살리기 위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에 이어 삼성토탈도 합치는 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프랑스 토탈에 삼성토탈 보유 지분 50%전부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거부당하자 토탈 지분을 매각해 석유화학에서 철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테크윈은 이미 수년 전부터 사업을 방위산업 중심으로 꾸려왔다. 2008년 분리된 카메라사업부문은 삼성전자로 넘어갔고, 반도체부품 사업은 올 상반기 분리해 엠디에스라는 신설법인에 매각하는 등 사업을 정비해왔다. 레이더를 생산하는 삼성탈레스는 삼성테크윈이 지분 50%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3대 방산전자 업체인 프랑스 탈레스와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재계에서는 이번 매각을 삼성그룹의 출자구조 단순화 작업과 연관지어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앞둔 출자구조 재편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출자구조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비주력 계열사를 그룹에서 떼어냈다는 얘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 분야는 삼성전자, 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 중심으로 출자구조를 단순화시키면 그룹 전체를 제일모직을 정점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쉬운 구조가 된다”면서 “석유화학과 방산산업을 정리한 것도 이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