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출신 금융권 인사들의 모임인 '서금회(서강금융인회)' 출신들이 주요 금융기관 CEO(최고경영자)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차기 행장(行長) 선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은행에선 당초 유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현 행장을 제치고 이광구 우리은행 개인고객담당 부행장이 급부상했다. 이 부행장은 서금회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다. 4개월간 공석이었던 KDB대우증권 신임 사장에는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겸 부사장이 내정됐다. 홍 부사장 역시 서금회 멤버다.

두 회사의 유력 CEO 후보가 서금회 출신이고, 사실상 '공기업'으로 인사 때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 등의 입김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현재 매각이 진행 중인 우리은행은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56.97%를 갖고 있고, 대우증권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KDB)의 자회사다. 우리은행과 대우증권 모두 공식적으로는 행장과 사장 추천위원회가 CEO를 결정하는 형태지만, '권력'의 핵심에서 누군가를 '점지'하면 추천위원회는 이를 추인하는 수준으로 간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대우증권 사장에 이어 우리은행장까지 서금회 출신이 된다면 기가 막힌 우연이거나, 서금회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금회, 2007년 박 대통령 한나라당 경선 탈락 이후 결성

서금회 출신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강대(전자공학과·70학번)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2007년 결성된 서금회는 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융권 동문들이 결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왼쪽부터)홍성국 대우證 부사장, 이광구 우리銀 부행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박지우 국민銀 부행장, 서병수 부산시장.

서금회는 처음 결성 당시에는 75학번 10여명이 주축이 되어 모임 창립을 이끌었다. 2011년까지만 해도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서금회 모임 참석자는 20~30명 수준에 불과했지만,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9월 열렸던 서금회 송년 모임부터 300여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서금회 출신의 금융권 인사는 "전통적으로 서강대 출신들은 연·고대 출신과 달리 '뭉치는' 분위기가 거의 없었는데 서강대 출신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면서 동문들이 결집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서금회는 모임에서 건배사를 할 때마다 '하늘에는 태양, 땅에는 서강, 서강에는 서금회'라고 구호를 외친다고 한다.

◇정치권 인사도 적극 참여

서금회는 이미 금융권에서 각 회사 CEO나 임원으로 진출해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서금회 회장은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경영·76학번)이 맡고 있다. 서금회 출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덕훈(수학·67) 현 수출입은행장은 지난 대선 당시 프라이빗에쿼티펀드 회장으로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 서금회 출신은 아니지만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당시 중앙대 교수도 대선 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현 정부가 들어서자 이덕훈 회장은 수출입은행장, 홍기택 교수는 KDB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국민은행 행장 대행을 지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박지우 국민은행 부행장은 7년 동안 서금회 회장을 지냈다. 이 밖에도 정연대 코스콤 사장(수학·71), 김병헌 LIG손해보험 사장(경영·76), 황영섭 신한캐피탈 사장(경영·77) 등도 서금회 멤버다.

서금회에는 정치권 인사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병수(경제·71) 부산시장은 서금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서금회 출석률도 높다. 서 시장은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 새누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친박계 핵심 인물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서금회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현재 금융가엔 금융회사 CEO 인선 과정에서 서금회 멤버들이 친박 핵심 인사인 서 시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현 정권의 핵심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져 있다. 서금회가 금융인뿐 아니라 정치인들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 인사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지난 MB 정부 시절 고대 출신들이 대거 금융회사 CEO 자리를 꿰차고 금융권을 지배했던 것처럼, 이번 정부에선 금융권이 서강대 천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