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가 보유 주식을 매각, 현금 확보에 나서자 업계가 주목하고 나섰다. 현대중공업의 범 현대가 보유주식 규모만 2조원에 달해 추가 매각 여부에 따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범현대가 그룹 오너들. 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순.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최근 보유한 상장사 주식 일부를 팔아 현재까지 7000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지난 19일 보유한 포스코 주식(87만2000주)을 전량 매각해 약 2865억원을 거둬 들였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0일 KCC의 보유 주식 80만3000주(지분율 7.6%)를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해 4152억원을 챙겼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지분 매각은 현금을 확보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시장에서 나타내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 잇따른 신용등급 강등…자금 조달 어려워진 현대重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의 현금 확보가 불투명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누적 적자만 3조원을 기록했고, 이에 신용평가사가 잇달아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을 강등해 회사채 발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달 초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현대중공업은 ‘AA+’에서 ‘AA’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AA’에서 ‘AA-‘로 신용등급이 각각 한 단계씩 낮아졌다. 한국신용평가도 현대중공업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9월 현대중공업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내린 바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상대적으로 단기간 자금 조달이 쉬운 기업어음(CP)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지난 3분기 현대중공업그룹의 기업어음 미상환 잔액은 2조6124억원으로 지난 2분기(2조1868억원)보다 약 19% 증가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0월 한 달간 9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을 새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현재 조선업계는 장기간 침체로 수주 실적이 좋지 않아 영업을 통한 현금 확보가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월 기준으로 168억달러의 수주 실적을 냈다. 이는 올해 수주 목표(250억달러)의 57% 수준이다.

◆ 현금 확보 위한 추가 주식 매각 가능성도

결국, 주식매각은 시급히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지난 3분기 기준, 현대미포조선의 부채비율은 약 344%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부채비율이 양호한 현대중공업(228%)과 현대삼호중공업(197%)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다.

증권가에선 현대중공업이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시장 요구에 맞추기 위해 추가 매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지훈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 기대만큼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아 현금 확보를 위해 추가로 주식을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중공업그룹이 범현대가 주식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보유한 범현대가 주식을 모두 팔 경우 2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은 현대자동차 440만주와 기아자동차 8만8245주, 현대상선 2342만4037주 등이다. 이를 종가로 계산하면 현대차 지분은 약 8000억원, 기아차 약 500억원, 현대상선 약 2500억원으로 총 1조1000억원이 넘는다. 현대삼호중공업도 현대차 3800억원 규모와 현대상선 11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런 관측에 선을 긋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상장사 주식이 대부분 범(凡) 현대가(家) 지분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의 오너인 정몽준 대주주가 한 때 현대그룹 경영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지분매각에 신중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탠다. 현대상선 지분을 팔면 현대그룹에 대한 영향력이 소멸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추가 매각 계획은 없다”며 “현금 확보는 지난 두 차례의 매각으로 충분히 이뤄졌다”며 추가 지분 매입 가능성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