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기자

“(게임인 여러분) 어깨를 쭉 펴세요.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이 왜 왔을까요? 저희가 (중독법) 잘 해결할테니 믿고 기다려주세요. 게임인은 개발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남경필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회장(현 경기도지사)이 지난해 11월 13일 열린 ‘2013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했던 말이다. 게임 중독자를 양성한다는 비판을 받던 게임업계는 유력 정치인의 달콤한 한 마디에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이 날 자리에는 남 회장을 비롯해 김상민, 김영주, 윤재옥, 이이재, 서병수(현 부산시장) 등 당시 국회의원들이 지원군으로 대거 참석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2014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1년 사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게임업계는 입을 모아 “상황만 악화했을 뿐, 변화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올해 게임대상 시상식에는 단 한명의 정치인도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 6월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남 전 의원은 지금도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회장이지만, 협회 업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다. 지원군 역할을 자처했던 정치인들도 모두 사라졌다.

19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게임대상’의 위상이 이처럼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게임 인들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게임업계는 오랫동안 이어진 정부의 규제와 게임에 대한 차가운 시선, 게임 중독법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업계가 힘을 합쳐 스스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게임인들은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주기만을 기대했다. 게임업체 대표들이 돌아가며 맡았던 각종 협회장 자리에 정치인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치인이 참여하면 규제는 사라지고 게임산업은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게임에 대한 이슈가 정치권에서 논의되다 보니 소리만 요란할 뿐, 실제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충분히 알렸다고 판단한 정치인들은 ‘단물을 빼먹고 버리듯’ 게임업계를 떠났다.

올해 게임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일부 게임인들은 “정치인들을 믿었던 우리가 바보였다”고 자탄했다. 결국 사태의 책임은 정치인을 택한 게임업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 단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올해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엔씨소프트, 넥슨 등 주요 대형업체들의 창업자나 최고경영자(CEO)는 단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게임업계가 얼마나 분열돼 있는지 보여준다.

한 때 세계 게임시장을 호령하던 한국의 게임산업이 여기서 끝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