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3월 28일. 김종필 육본 정보참모부 기획과 과장(중령)은 박정희 육군 제2군 부사령관(소장)의 서신을 가지고 삼화빌딩 309호실을 찾았다. 사무실에서는 삼화빌딩의 사장이었던 남상옥씨가 앉아 있었다. 서신을 읽어본 남씨는 김 중령에게 1백20만환을 건네주었다. 며칠 뒤인 4월 4일엔 박 소장이 직접 남씨의 사무실에 들렀다. 남씨는 박 소장에게 100만환을 주었다. 남씨는 이후에도 김 중령에게 두 차례에 걸쳐 총 200만환을 주었다고 한다.

5월 13일. 박 소장은 남씨를 집으로 불렀다. 박 소장은 남씨에게 “거사 일이 5월 16일이니 마지막으로 (혁명 자금을) 한 번 더 부탁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필 13일은 토요일이었다. 일단 남씨는 수중에 있던 400만환을 김 중령에게 보내고서, 돌아오는 월요일인 15일에 100만환을 추가로 박 소장 측에 건넸다. 언론인 조갑제씨가 밝힌 ‘5ㆍ16 혁명사’의 기초가 된 ‘혁명실기(革命實記)’에 남씨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당시 물가를 보면 쌀 한 가마의 가격은 1만8000환 정도. 남씨가 준 920만환은 현재 돈으로 1억원 남짓이라고 한다.

5ㆍ16쿠데타 자금 댄 이후 승승장구

1935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을 졸업한 남씨는 1959년 7월 국제약품을 설립하면서 사업가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씨가 처음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시기는 1961년 8월, 서울상의 회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다. 5ㆍ16이 일어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민간인들 가운데 자금을 가장 많이 지원했던 남씨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남씨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1968년 남씨는 서울 장충동에 있던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사들였다. 남씨가 재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도 이 무렵부터다. 국제관광공사에서 시행한 공개입찰에서 남씨는 경쟁자보다 1700만원을 더 써내며 호텔 경영권을 따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간단히 말해 개운하지 못한 거래라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타워호텔의 시세는 10억원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씨는 7억3700만원에 호텔을 손에 쥐었다. 호텔 인수 대금의 60%인 4억4220만원을 정부가 4년에 걸쳐 나눠내도록 조치했다는 점도 남씨에 대한 특혜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남씨와 함께 공개입찰에 참여했던 사람 역시 남씨의 지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재계에서는 다소 낯선 인물이 타워호텔을 인수하자 ‘숨은 재벌이 등장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남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과거 조언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남씨가 쿠데타 자금을 댔던 덕에 정권의 숨은 실세 자리를 꿰찼다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남씨는 이후에도 사업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다. 1973년에는 ‘대부 이상순’의 원풍그룹(조선비즈 11/7 기사 참조), 신동아그룹 등과 함께 대성목재(현 동화홀딩스의 자회사)를 인수했고, 1975년에는 증권거래소에 국제약품을 상장시켰다. 1982년에는 세창물산의 김종호 회장, 한국제지의 단사천 회장 등과 손을 잡고 신한투자금융을 설립하기도 했다.

로열패밀리 구축했지만 회사들은 많이 퇴색

남씨의 집안은 ‘로열패밀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남씨는 재계에서의 영향력과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남부럽지 않은 혼맥을 쌓았다. 남씨의 딸인 남덕자 여사는 동국제강 창업주인 고(故) 장경호 회장의 장남인 고(故) 장세창씨와 결혼했다. 남씨의 조카는 제24대 재무부 장관과 제14대 국무총리를 지낸 고(故) 남덕우씨다.

1984년 재무부 자료에서는 남씨의 재력을 간단히 엿볼 수 있다. 1984년 3월. 재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속ㆍ증여세 고액납부자 명단을 살펴보면 남씨의 아들이자 남충우 전 타워호텔 회장은 4억8900만원의 증여세를 납부해, 고액납세자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증여세 기준으로 고액납세자 1위는 18억6100만원의 세금을 냈던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사장이었는데, 그는 개인이 아닌 회사(현대건설)로부터 증여를 받았던 것이었다.

화려하게 명맥이 이어진 집안과는 별개로 남씨의 회사들은 남씨 별세 이후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남씨를 재계의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타워호텔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07년 부동산개발업체인 새한씨앤씨에 팔렸다. 매각 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로 이름이 바뀐 타워호텔은, 2012년 다시 한 차례 새 주인을 맞이해 현재는 현대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국제약품은 최근 3세 경영 체제 시동을 걸고 있다. 남씨의 손자인 남태훈씨는 지난해 초 회사 부사장에 임명됐다. 국제약품은 최근 흑자로 돌아섰다. 2012년 147억원에 달하던 영업손실은 올해 3분기 6억5000만원 영업이익으로 바뀌었다. 같은 기간 189억원이었던 순손실도 3억7000만원 순이익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과거 굵직굵직한 매물들을 사들였던 영화(榮華)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남씨는 4남 2녀의 자식을 두고, 1984년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