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례처럼 CB를 헐값에 인수해 증여세를 회피하는 ‘편법 증여’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편법 증여의 수단이었던 간주모집의 증여세 예외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여야가 잠정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재용 방지법'으로 불리는 상속세법 개정안은 다음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실권주를 균등하지 않게 배정하거나 저가 발행한 CB를 인수할 경우 간주모집 절차를 밟았더라도 증여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간주모집은 50인 미만을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한 이후 1년 이내에 50인 이상에게 양도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사실상 공모로 분류돼 신주가 시가보다 낮게 발행되더라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일반 다수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공모 과정에서의 할인 발행은 증여로 보지 않고 있다. 일정부분 시가 보다 낮게 발행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경쟁매매를 하기 때문에 할인발행된 신주를 누가 취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주모집을 편법 증여로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국세청은 간주모집을 증여세 면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과세하려 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월 "저가로 유상증자가 이뤄졌더라도 간주모집에 따라 진행됐을 경우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간주모집이 사실상 공모이기 때문에 증여세를 물려서는 안된다고 엄격하게 법을 해석했다.

여야는 간주모집이 편법 증여로 악용될 소지가 농후하다고 보고 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 개정을 통해 일부 주주가 포기한 실권주를 인수하거나 저가로 발행된 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증여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1996년 에버랜드 CB를 시세보다 낮은 주당 7700원에 125만4000여주(지분 62.5%) 발행했으나 이건희 회장과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은 주주배정을 포기했고,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이 회장의 자녀 3명에게 3자배정 방식으로 실권주가 넘어갔다. 당시 이 부회장은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후 ‘편법 증여’ 논란이 불거지자 이 부회장은 지분취득 과정에서의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개정안 잠정 합의에 대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회가 재벌 2·3세들의 편법 증여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며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는 점을 상기해 현재의 '잠정 합의'를 '본회의 통과'로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른바 ‘이재용 방지법’을 다음달 예산안을 의결할 때 동시에 처리할 예정이다. 기재위 관계자는 "조세소위에서 예산안 부수법안과 함께 최종 의결할 계획"이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함께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