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마운틴뷰에 있는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육성 기업인 '500스타트업' 사무실. 300㎡(약 90평) 크기의 공간 한쪽에 온라인 교육 사업을 준비하는 '클라우드 아카데미' 창업 멤버 5명이 책상을 붙여놓고 앉아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인이다. 자코모 마리난젤리(Marinangeli) 대표와 창업 멤버 4명은 올 10월 처음으로 미국에 왔다. 500스타트업의 스타트업 보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모두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남자 5명이 낯선 이국 땅에서 좁은 집을 빌려 함께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실리콘밸리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스타트업 키우는 실리콘밸리

이들은 실리콘밸리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걸까. 마리난젤리 대표는 "언어와 문화가 장벽이지만 스타트업이 크기에는 실리콘밸리가 최고"라고 말했다. 500스타트업은 미국 최대의 전자 결제 기업 '페이팔' 출신인 데이브 매클루어(McClure)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성장을 돕고 지원하는 대신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도록 도와줘서 이들이 대기업에 인수되거나 상장(上場)될 때 이득을 얻는 것을 비즈니스로 삼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시‘500스타트업’사무실에 입주한 이탈리아 출신의 클라우드 교육 서비스 기업‘클라우드 아카데미’창업 멤버들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500스타트업에 입주한 각 스타트업 직원들이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데모데이(demoday) 행사에 참가한 뒤 어깨동무를 한 채 무대 위에 모여 있다.

500스타트업은 1년에 두 차례씩 스타트업 30여개를 선발해 집중 육성한다. 클라우드 아카데미도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500스타트업으로부터 10만달러(약 1억1000만원)를 투자받았고, 500스타트업은 지분 7%를 확보했다. 500스타트업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난 4년간 투자한 회사는 900곳이 넘는다.

프로그램 참여 기업이 얻는 가장 큰 혜택은 잘 짜인 실리콘밸리 창업 노하우를 집중적으로 전수받는다는 것이다. 500스타트업에 합류한 기업은 석 달 동안 1000명 이상의 선배 창업자와 200명 이상의 멘토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이 중에는 500스타트업을 거친 기업의 대표도 있고, 구글·페이스북·HP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의 임직원들도 있다. 마케팅·재무·디자인·판매·사용자 테스트·법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 강의도 준비돼 있고, 500스타트업을 거친 다른 기업과의 만남 자리도 있다.

크리스틴 차이(Tsai) 500스타트업 파트너는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수준의 초기 스타트업이 첫 서비스나 제품을 내어놓을 때까지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에는 500스타트업·Y컴비네이터·플러그앤플레이 등 벤처 육성 자체를 사업으로 하는 기업만 10여개에 달한다. 이곳을 떠난 기업이 성장하면 추가로 투자할 전문 벤처 캐피털도 규모별로 수백 곳에 달한다. 설립 단계의 회사를 돕는 투자사로부터 초기 운영 자금을 대는 '시리즈A' 투자사, 그보다 더 성장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시리즈B~D' 투자사 등 전문화된 투자사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누구든 자기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증명할 능력만 있다면 나머지를 도와줄 전문가 집단이 즐비하다는 얘기다.

기업·서비스·투자 모두가 경쟁

실리콘밸리는 미국 안에서도 특별한 공간이다. 올 1~9월 미국 전역에서는 332억달러의 벤처 투자가 이뤄졌다. 이 중 51%인 170억달러가 실리콘밸리 기업에 투자됐다. 금액으로 단순 계산해도 실리콘밸리에서 미국 전역의 절반을 넘는 창업이 이뤄지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의 KTB벤처스 이호찬 대표는 "실리콘밸리는 기업만 아니라 투자자끼리 경쟁도 치열하다"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도 이곳에서 경쟁하지만 투자나 운영 면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타나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서비스 보급으로 창업 비용이 줄어들면서 많은 성공한 창업가들이 또 다른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이 10억달러에 인수한 사진 공유 앱) '드롭박스'(기업 가치 1조달러로 추산되는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등을 찾겠다고 1만달러 규모의 초기 창업 자금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자를 이어가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좋은 투자처를 찾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