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드라마 '미생'의 열풍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도 주말이 끝나면 예외 없이 "지난주 '미생' 봤어?"로 대화가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K 과장은 '미생'의 열혈 신도다. 월요일 아침 회의 때마다 주말에 본 '미생'의 스토리를 복기하고, 등장인물과 우리 회사의 누군가를 짝짓는다.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던 자신의 힘들었던 신입 사원 시절을 떠올리고,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상사에게 당한 불합리한 처사에 흥분하며 분노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K 과장의 '미생' 예찬을 듣고 있는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드라마 속의 '악역'들에게 그렇게 분노를 털어놓지만, 사실 K 과장은 현실의 우리에게 드라마 속 악역을 모두 모아놓은 캐릭터이다. 늘 뒤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기 바쁘고, 여직원들에 대한 농담도 가끔 수위를 넘어간다. 명문대를 나온 그는 신입 사원이 올 때마다 "학교 어디 나왔어?"를 첫 질문으로 던지고, 자기보다 '잘나가는' 지방대 출신 동료에 대해 "쟤는 운도 좋아"라는 빈정거림도 빼놓지 않는다. 실적이 되지 않는 허드렛일은 늘 다른 직원에게 미루고, 부서원들의 경조사엔 가지 않아도 회사에서 '줄'을 잡기 위한 술자리엔 빠지지 않는다. 사실 고생담을 섞어 미화하곤 있지만 그는 신입 사원 시절부터 귀찮은 일은 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던 '뺀질이'로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다.

"자기가 장그래인 줄 알아." K 과장의 동기 P 과장의 말이다. 전문대를 나왔으나 불굴의 노력으로 3개 국어를 습득하여 최고 실적을 올리고 있는 P 과장은 회사에서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신입 사원 시절, 누구보다 자신을 무시했던 자가 K 과장이었다고 고백하며 "어떻게 해서든 쟤는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지금 그는 회사에서 K 과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퍼맨이 되어 있다.

'미생'은 리얼리티가 넘치는 훌륭한 직장인 드라마이다. 하지만 '미생'을 본 사람 모두가 자신을 '장그래'에 대입하면 오산이다. 자신이 장그래인지, 장그래를 괴롭히는 악역에 가까운지,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