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터보 엔진 모습

‘배기량’과 ‘마력’.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성능을 판단할 때 이 두 지표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배기량이 큰 차가 힘이 좋다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여겨졌고, 자동차 회사들도 자동차의 성능을 강조하고 싶을 때 주로 배기량과 마력을 앞세웠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 변화의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엔진이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을 좌우하는 ‘토크(Toque)’가 성능을 판단하는 새 지표로 떠오른 것. 최종식 쌍용차 영업부문장(부사장)은 18일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선택하는 기준이 토크로 바뀌고 있다”면서 “자동차 회사들은 신차를 개발하며 토크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크의 개념도

◆ 자동차, 이제는 ‘토크 시대’

토크는 엔진이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의 크기를 말한다. 자동차 엔진에서 연료를 폭발시켜 생긴 힘을 바퀴로 전달해주는 크랭크축을 얼마나 세게 비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동차가 가속 초반에 얼마나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단위는 kg·m를 쓰고, ‘킬로그램 미터’라고 읽는다. 1kg·m의 토크는 엔진 축에 직각으로 1m 떨어진 곳에 걸린 1㎏의 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힘을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의 힘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마력(hp, ps)은 엔진이 낼 수 있는 절대적인 힘(토크)에 빠르기(회전수)를 더한 개념이다. 무거운 짐을 실은 차를 얼마나 잘 끌고 갈 수 있는지, 가속 중·후반 차가 얼마나 더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지 등을 결정한다. 1마력은 말 1마리가 끄는 힘과 같다.

토크가 중요한 요소로 부상한 이유는 도심에서 주로 쓰는 경우 마력보다 체감하는 성능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도심 운전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정지 상태서 출발할 때 시원한 가속감을 느끼려면 토크가 커야 한다.

특히 디젤 엔진은 같은 크기의 가솔린 엔진보다 토크가 커 초반 가속력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최근 자동차 시장의 대세로 떠오르기도 했다. 가솔린 엔진을 단 BMW 520i(1997㏄)의 최대토크는 27.5㎏·m이다. 디젤 엔진을 단 520d 모델(1995㏄)의 경우 최대토크는 40.8㎏·m로 1.5배 수준이다.

하승진 국민대 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가솔린 엔진보다 디젤 엔진이 폭발을 통해 순간적으로 내는 힘이 더 강력해 토크가 더 크다”고 말했다.

벤츠 더 뉴 C클래스 모습

◆ 토크 강화한 신차 봇물…국산차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

최근 출시된 수입차를 보면 토크가 개선되거나 동급보다 큰 경우가 많다. 이런 변화에는 최근 가솔린 모델도 동참하고 있다. 2L 엔진을 단 메르세데스 벤츠의 C200이 대표적이다. C200의 최대 토크는 30.6㎏·m로 기존 모델(2014년형 C200, 27.5㎏·m)보다 11%가량 개선됐다. 혼다의 SUV CR-V 2015년형은 최대 토크가 25㎏·m로 기존보다 10%가량 향상됐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제작사는 토크 경쟁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로 나온 차의 토크가 기존보다 작은 경우도 있다. 현대자동차 그랜저(2.4 가솔린 모델)의 경우 최대 토크는 24.6㎏·m로 기존 모델(그랜저 2013년형, 25.5㎏·m)보다 작아졌다. 제네시스 2013년형(BH330)의 최대 토크는 35.5㎏·m였지만 신형 제네시스 3.3은 35.4㎏·m이다.

하승진 교수는 “토크를 높이면 초반 가속력이 좋아지지만, 더 많은 연료를 써야 해 연비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며 “토크와 연비를 동시에 잡기 위해 엔진과 변속기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