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묵 기자

1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팰로앨토시(市)의 한 소매점.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려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다가 계산대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애플 페이 받습니다(We accept Apple Pay)." '정말 편할까'란 생각이 들어서 손에 든 '아이폰6플러스'를 결제 단말기에 들이대봤다. 결제 과정을 찍기 위해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찍지 못했다. 아이폰을 단말기에 대자마자 삑 소리와 함께 결제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간단해서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교통카드로 버스비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플 페이, 한 달 만에 美 모바일결제 절반 차지

애플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애플 페이'가 쓰기 쉽고 빠른 장점을 앞세워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애플 페이는 신용카드 정보를 아이폰에 저장해두고 오프라인 가게에서 대금을 치를 때 사용하는 서비스다.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의 미국 내 1만4000여개 매장에서 발생하는 모바일 결제의 절반을 차지했다. 고급 식품점 체인 홀푸드마켓에서는 한 달 새 15만회 이상의 애플 페이 결제가 이뤄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덕분에 미국 모바일 결제 시장의 '파이' 자체도 커지고 있다. 애플 페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 카드'도 애플 페이 출시 후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 구글 역시 모바일 결제 서비스 '구글 월렛'의 사용량이 늘었다고 밝혔다. 애플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모바일 결제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분석회사 포레스터리서치의 데니 캐링턴 연구원은 "애플의 브랜드 파워와 쉬운 사용방법이 소비자들에게 먹히고 있다"며 "다른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못 한 일을 애플이 이뤄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한국 모바일 결제는 규제에 꽉 막혀

애플 페이는 모든 과정이 간단하다. 아이폰의 홈 버튼에 미리 지문을 등록한 손가락을 올려놓고, 결제 단말기에 아이폰을 갖다대기만 하면 결제가 끝난다. 신용카드 등록도 쉽다. 아이폰 카메라로 신용카드를 촬영만 하면 끝이다. 별도의 결제금액 제한도 없다.

아이폰으로 모바일 결제 서비스‘애플 페이’를 사용하는 모습. 애플이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시작한‘애플 페이’가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를 무기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모바일 결제 서비스는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LG유플러스가 출시한 '페이나우'는 국내에서 널리 쓰이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중 하나다. 하지만 페이나우로 오프라인 상점에서 결제하려면, 5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실행한 뒤 비밀번호를 넣고, 결제 수단을 선택하고, 결제용 바코드를 띄워서 점원에게 건네줘야 한다.

결제 과정만 따지자면, 다음카카오의 '뱅크월렛카카오'도 애플 페이처럼 간단하다. 스마트폰을 결제 단말기에 갖다대면 결제가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티머니처럼 선불형 서비스여서 미리 전자지갑에 돈을 채워놔야 한다.

뱅크월렛카카오를 쓰려면 반드시 PC를 통해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PC에서 액티브X 방식의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공인인증서로 본인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회 결제할 수 있는 금액도 50만원으로 제한돼 있어 소액 결제만 가능하다.

국내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이처럼 사용하기 불편한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보안'을 핑계로 편리한 결제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준비했던 IT 업체 관계자는 "획기적인 결제서비스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금융감독원 심의에 들어가면 계속 퇴짜를 맞다가 너덜너덜해져서 나온다"며 "금융 당국이 사실상 새로운 시도를 틀어막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부정사용 예방, 금융정보 유출 방지, 명의도용 방지 등을 위해 보안성을 심의한다"며 "온라인 결제 서비스에 대해서는 55개 항목을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