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선언에 대해 산업계는 "대중(對中) 수출 환경이 크게 좋아질 것"이라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최근 수년간 성장이 정체된 우리 경제에 한·중 FTA가 자극제가 될 것이란 평가도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하는 상황에서 타결된 한·중 FTA는 13억 중국 시장을 우리의 내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FTA로 수출액 증가 같은 눈에 보이는 실리(實利)뿐 아니라 양국 간 교류 증진으로 인한 한국 제품의 브랜드 파워가 올라가는 등 간접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업종별로는 엔터테인먼트·화장품·가전·운송 등에서 큰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섬유·고무·플라스틱과 같은 저가(低價)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전·전자]

밥솥은 웃는데… 휴대폰은 큰 효과 없어

휴대전화·가전 등 전자업계에서는 한·중 FTA로 인한 효과가 당장 크진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인 휴대전화·가전·반도체 등은 1996년 채택된 ITA(정보기술협정)에 따라 이미 중국에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중국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수출되는 것이 많지도 않다. 다만 국내에서만 생산하는 프리미엄급 제품의 경우 수출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종에서 FTA 효과를 크게 누리는 분야는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전기압력밥솥 등 일부 특화 제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으로 수출하는 밥솥 완제품에는 8%의 관세와 2~3%의 수입수수료 그리고 17%의 증치세 등을 포함해 약 27%의 세금이 붙는다. 리홈쿠첸 이대희 대표는 "현재 국내에서 6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전기압력밥솥이 중국 현지에서는 관세에 현지 유통 비용까지 합쳐 약 130만원에 팔리고 있다"며 "관세가 무관세 수준으로 낮아진다면 중국 내 판매가격이 낮아져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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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유화·철강]

철강 수출 장기적으론 증가, 車부품은 제외 허탈

철강 업계는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 수출 물량이 늘어날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그동안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중국에서 국내로 넘어오는 철강재의 경우 관세를 거의 매기지 않은 반면, 중국 정부는 이와 상관없이 한국산 철강재에 대해 일반강의 경우 3~5%, 고급강은 8~10% 정도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내 철강 공급 과잉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관세가 낮아진다 하더라도 당장 수출량을 크게 늘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시장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화 업계에서도 당장 관세 인하로 인한 혜택이 크지 않다고 본다.

자동차 분야에선 일부 부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졌다. 애초 한·중 FTA에서 가장 수혜를 볼 업종이 자동차 부품이란 전망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플라스틱·섬유·고무]

금형·용접 등 한국의 뿌리산업 타격 예상

국내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산업과 부품, 기초소재 등의 업종에서는 저비용·저부가가치 제품의 피해가 예상된다. 뿌리산업은 소재를 부품으로,부품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주조·금형·용접·열처리·염색 등 기초적인 공정산업이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국내 주력산업의 밑뿌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업체들은 한국산을 100점이라고 봤을 때, 중국 제품의 품질·기술 경쟁력은 82.3점이지만 가격 경쟁력은 125.9점으로 높게 평가했다. 범용(汎用) 기술을 활용하는 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상품과의 직접적인 경쟁으로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그래도 유리한 것이 더 많다"며 "한국 상품에 대한 중국 시장의 선호도가 중소기업까지 확대되고 있어 불리한 품목은 정부와 긴밀히 의논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패션]

클릭으로 한국 옷 구매… 요우커 직구 늘어날 듯

화장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율이 6.5~ 10%에 이르기 때문에 관세가 철폐될 경우 현지에서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특히 현지 생산보다는 수출에 집중하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의 업체들이 큰 혜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LG생활건강 측은 "한·중 FTA 타결이 화장품 업계에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번 FTA의 구체적 협상문을 보고 난 후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류 수출도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산 의류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높지만 높은 관세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따라서 현재 10~15% 적용되고 있는 수출 관세가 소멸될 경우 국내 업체들의 중국 사업 확장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또 전자상거래가 FTA에 포함되면서 앞으로 온라인으로 화장품·의류 등 한국 제품을 직접 구매하려는 중국 소비자들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1000위안(약 17만7000원) 이하의 제품에 대해서는 목록 통관 후 무관세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소비자들이 해외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구매하는 직구 거래액은 지난달 2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 해외 소비자들이 전자상거래를 통해 한국 제품을 구매하는 규모는 37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엔터테인먼트·항공]

韓流 날개 달았지만… 中 거대자본 공습 우려

중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처음으로 개방(한국기업의 49% 지분 참여 허용)되면서 중국 내 한류(韓流) 문화상품 수출이 더욱 촉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특히 한·중 양국이 함께 제작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재원 문화통상팀장은 "양국 간 문화 교류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물론 거대 자본을 앞세운 중국의 파상 공세에 국내 엔터테인먼트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제작사들이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콘텐츠의 해외 판권도 대부분 중국 손에 넘어갈 것이란 얘기다.

항공 업계는 한·중 FTA 타결로 양국 간 승객 왕래와 수송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2018년쯤 방한 중국인이 10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번 FTA 타결로 그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한항공이 중국 노선에서 올리는 수익은 전체의 13%로, 특히 화물의 경우 23%에 이른다. 중국 22개 도시에서 30개 노선을 운항 중인 아시아나항공은 "여객과 화물 수송량이 지금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