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 기자

Q.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 비트코인이 익명성이 높고 보안성은 낮은 데다 가격변동성이 높은 특성에도 법적인 보호장치가 미비하다. 자금 세탁과 불법 거래에 쓰일 수 있다. 정부가 과세기준 등을 연구해야 한다.
A. 최경환 경제부총리 : 각 국 동향을 감안해서 검토해보겠다.

지난달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과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이끄는 경제 수장이 나눈 질의와 답변이다. 현 정권 경제팀이 차세대 디지털 화폐로 부상 중인 ‘비트코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이 짧은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여당 의원은 비트코인이 가져올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불법 거래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최 부총리의 자세도 소극적이다. ‘창조경제’를 국정 기조로 내세운 현 경제팀이라면, 비트코인에 관한 1차 연구를 이미 심도있게 끝냈다는 답변쯤은 내놓아야 하는 데 말이다. 최 부총리는 “검토해보겠다”는 국감의 전형적인 방어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최근 1년 동안 비트코인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11월 세계대통령이라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RB) 이사회 의장이 “비트코인은 빠르고 안전하며 효율적인 지급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덕분에 1비트코인당 가격은 1000달러를 넘어섰다. 올 2월에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일본 마운트곡스가 4700억원에 달하는 비트코인 85만개를 도난 맞았다고 밝히는 어이없는 일이 터졌다. 비트코인 가격은 300달러대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초대형 악재에도 비트코인 생태계가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결제업체 페이팔이 비트코인 업체와 제휴해 결제 서비스에 나섰다. 지난해 대대적인 사업 혁신을 시도한 델 창업자 마이클 델은 비트코인으로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결제 시스템을 바꿨다.

미국 국세청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재산처럼 분류해 과세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로 인정해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달러화가 기축 통화로 자리잡은 후 글로벌 금융 중심지에서 밀려난 영국이 비트코인으로 반전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왔다.

잇따른 악재에도 미국 벤처캐피탈 업계는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베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캐피탈업계의 비트코인 투자금액은 지난해 총 투자금액보다 30% 많은 1억1320만 달러에 달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과 제리 양 야후 공동창업자 등이 참여한 투자단은 지난 5월 비트코인 지불업체인 비트페이에 30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투자했다.

한국은 비트코인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덕분에 비트코인을 둘러싼 온갖 후폭풍을 피해가고 있다. 다행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후폭풍 뿐만 아니라 차세대 혁신의 조류마저 피해가는 것은 아닐까.

아프리카까지 송금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없는 지불 방법, 책 한 페이지, 기사 한 꼭지처럼 매우 작은 금액(이를테면 1원어치 물건)을 사고 파는 방법, 몸무게 5kg 이상 감량에 성공하면 격려금이 자동으로 지급되는 앱 등 비트코인과 같은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활용한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일본은 비트코인 최대 거래소를 운영한 경험이 있고 중국은 비트코인 투자 열풍으로 정부가 규제에 나서고 있다. 한국이 차세대 통화 혁신 전쟁에서 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버블마저 부럽다.

최경환 총리팀이 비트코인 규제 방법을 먼저 따지기보다 비트코인을 잘 이용해 미래 경제 먹거리를 만드는 방법부터 고민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에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를 세우겠다는 목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전을 실현하려면 심재철 의원이 우려했던 보안 문제, 법적 보호장치 등도 해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국가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가겠다고 해서는 새로운 화폐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 그것은 이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라는 비전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