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3분기 실적을 발표한지 열흘 만에 IBM은 텐센트, 트위터, 마이크로소프트 등과의 협력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다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IBM은 더 이상 IT 기업이 아니다. IBM은 비전이 없다.”

미국의 대표 IT기업 IBM에 대해 현지 투자자들이 뿔이 났다. IBM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원인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 IT기업을 잇따라 창업하며 거부를 쥐고 투자사업가로 변신한 마크 쿠반은 지난달 미국 경제 전문 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은 없고 자기주식을 사들이는데 급급한 IBM에 절대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분기 실적발표에서 버지니아 로메티 IBM 사장은 한 애널리스트로부터 “지금이 IBM의 위기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듣는 ‘굴욕’을 맛보기까지 했다.

한때 IBM은 IT기업도 끊임없이 사업구조를 바꾸며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여겨졌다. 1993년 신임 사장이 된 루 거스너는 “이제 PC는 모두 잊어라”며 과감하게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 중심 기업으로 바꾸었다. 2002년 바통을 이어받은 샘 팔미사노도 PC사업부를 레노버에 매각하고,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컨설팅 부문을 인수하는 등 같은 기조를 이어갔다.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 사업 영역으로 주력 사업을 바꾸는 과정은 삼성전자(005930)등 국내 IT기업들의 벤치마크 모델로 거론돼왔다.

◆“한물간 제품 누가 사나”…“연구개발 소홀이 원인”

그러던 IBM이 이제 투자자들로부터 ‘앞이 안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까닭은 2년 6개월(10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로메티 사장이 확실한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IBM은 로메티 사장 취임 이후 클라우드컴퓨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잇따라 새로운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20억달러를 들여 클라우드서비스 업체 소프트레이어를 인수하는 등 클라우드컴퓨팅과 데이터분석 분야에서 계속 관련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IBM의 행보는 별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IT 전문 애널리스트인 토니 사토나기는 “방향은 맞을 지 몰라도 여전히 (성장) 스토리를 보여주어야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베흐루즈 나자피 퀘스트코제약 IT담당 부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IBM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며 IBM을 “한물간 회사”로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15년간 IBM의 전체 매출액 가운데 연구·개발비 비중은 6%에 불과했다”며 “대신 자사주 매입 등 금융공학적인 방법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술 개발 및 발빠른 투자는 외면하고 주가 방어에만 급급했던 경영 방식이 IBM의 경쟁력 상실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IBM은 최근 텐센트, 트위터 등 다른 IT업체와 손을 잡고 클라우드서비스 및 데이터분석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SAP 등 최근 IBM이 ‘협력 계획’을 발표한 업체들은 거의 모든 IT 업종에 걸쳐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지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지사도 구조조정 잇달아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메인프레임 등 하드웨어 사업 부문은 수익성 악화에 고전하고 있다. 3분기 메인프레임 사업부의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35%, 컴퓨터 장비 사업부의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2% 각각 줄었다. 서비스 부문에서 매출 하락 폭은 2.9%였다. 3분기 매출이 전년동기 233억달러에서 3.9% 줄어든 가장 큰 원인으로 하드웨어 분야의 급속한 퇴조가 거론되는 이유다.

하드웨어 사업의 몰락은 IBM 한국지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IBM의 국내 사업은 기업용 대형 컴퓨터인 메인프레임이 핵심이다. 소프트웨어 매출의 50% 이상이 메임프레임 사업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메인프레임 사업이 신규 발주처를 찾지 못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 쪽에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2013년 IBM 한국지사의 매출은 1조2253억원으로 2012년 1조2400억원과 비교해 소폭감소했다. 2013년 매출은 2010년 매출(1조2250억원)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4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한 것이다.

IBM 한국지사는 이미 지난해 하드웨어 사업부와 서비스 인력을 중심으로 200명 정도를 감원했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사업부 전체 인력의 20% 수준인 60여명이 콜센터와 IT서비스로 전환배치됐다. 사실상 구조조정을 실시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