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회사들이 세계 시장 공략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혁신적인 신약(新藥)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전체 의약품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과 다국적 제약사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수익은 잘 나지 않는 환경이 됐다. 내수를 통한 성장에 기대기에는 한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지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 약 하나로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점도 이들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이재국 한국제약협회 상무는 "국내용 약을 개발해 성장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며 "세계 시장에서 통할 제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들 중심으로 제약업계가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있는 셀트리온 공장의 정제실에서 직원들이 단백질을 걸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 첫 항체 바이오시밀러, 유럽 시장 열고 일본 간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로 항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했다.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램시마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끝난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을 뜻한다. 램시마는 지난해 유럽에서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올해 캐나다, 일본, 터키에서도 판매 허가를 받았다.

셀트리온은 처음부터 세계 시장 공략을 목표로 삼았다. 임상시험 단계부터 선진국에서의 허가를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한 것이다. 회사는 내년부터 램시마 매출이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에서 내년 2월 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끝나면 램시마의 실제 판매가 가능해진다. 셀트리온은 시장 규모를 연간 1조7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의사가 아닌 정부나 보험사가 입찰을 통해 어떤 약을 쓸지를 정한다"며 "오리지널 약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일본 시장을 공략할 채비도 마쳤다. 일본 10위권 제약사인 니혼가야쿠(日本化藥)와 판매 계약을 맺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각국의 판매 협력사들이 이미 강력한 영업망을 가진 현지 강자들이라 내년부터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약효 지속 시간 늘린 신약에 플랜트 수출까지

전통의 제약회사들도 수출을 통한 성장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다. 한미약품은 기존 의약품보다 약효 지속 기간을 늘리거나 두 가지 약을 하나로 합쳐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였다.

한미약품은 글로벌 제약회사인 MSD를 통해 두 개의 약을 하나로 합한 고혈압약 '아모잘탄'을 세계 52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성분이 다른 두 가지 약을 하나로 합해 효능을 극대화하는 기술은 이 회사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또 미국 스펙트럼사와 2012년부터 '랩스 GCSF'라는 약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호중구감소증 치료제인 이 제품은 기존 약의 3분의 1 용량만 투여하면서도 투약 주기는 하루 1회에서 3주에 1회로 훨씬 늘었다.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 시험이 예정보다 일찍 끝나 연내에 임상 3상에 들어가는 신청서를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제약업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계속해 세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녹십자는 주력 품목인 백신과 혈액분획제제(혈액을 원료로 한 의약품)의 수출과 함께 플랜트 단위의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에서 4개 업체만 가진 세계보건기구(WHO) 독감백신 사전적격인증(PQ)을 보유할 정도로 백신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혈액분획제제 분야 역시 강점이 있는데 최근에는 아예 공장을 지어주는 플랜트 단위 수출을 시작했다. 태국에 짓고 있는 플랜트는 현재 공정률이 90%를 넘었다. 국내 제약회사가 해외에 생물학적제제 플랜트를 수출한 것은 처음이다. 녹십자의 수출액은 2011년 814억원에서 지난해 1517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20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녹십자 관계자는 "제조 기술과 운영 노하우까지 수출하는 것은 다른 제약회사가 개척하지 못한 분야"라며 "앞으로 수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절반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