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아버지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병원에 입원해서도 마냥 침대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그때, 환자가 일상 생활에서 쉽고 재밌게 재활훈련을 할 수 있는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헬스케어 벤처기업인 네오팩트 반호영 대표가 개발한 재활치료 게임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며 느꼈던 아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뇌졸중이나 교통사고를 당한 뒤 생명은 건졌지만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국립재활원에 이어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의 호평을 얻고 있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장갑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낀 다음 화면 안내에 따라 손가락이나 손바닥, 손목을 움직이면 된다. 환자들의 재활 훈련은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급한 환자 치료로 바쁜 병원은 장기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기 힘들다. 반 대표는 "신체 기능이 떨어진 환자라도 끊임없이 팔과 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다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면서 "게임은 재활치료의 동기를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기능 회복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반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의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주립대에서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 무렵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헬스케어 벤처 붐의 현장을 목격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헬스케어 투자, 미국은 적극적 한국은 소극적

미국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디지털 헬스케어, 건강 모니터링기기, 유전체 분석 등 헬스케어 벤처기업이 투자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570곳의 헬스케어 기업에 약 22억 달러(2조 300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구글과 애플도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했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서 이뤄진 143건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투자 중 50건이 캘리포니아주에서 성사됐다.

반면 한국은 아직 헬스케어 투자에 소극적이다.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기업은 투자 유치가 어렵다. 헬스케어 전문 투자자도 아직 없다. 이 때문에 국내 헬스케어 창업자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뇌 인지기능을 훈련시키는 기기를 개발한 와이브레인은 알츠하이머와 치매 환자들에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 연구를 하면서 스톤브리지 캐피탈 등으로부터 350만 달러(약37억원)의 투자를 가까스로 받았다.

외과의사 출신 정희두 대표가 창업한 헬스웨이브도 미국행을 택했다. 헬스웨이브는 약 900여 종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질환에 대한 궁금증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 등에 공급했지만, 더 큰 시장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지난 6월 미국에서 '헬스브리즈'라는 별도기업을 설립해 투자유치에 나섰다.

◇"IT 강한 한국, 헬스케어 산업에 유리"

자료:액센츄어 리서치

헬스케어 창업환경은 열악하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도전장을 내미는 기업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헬스케어 창업 기업은 약 50곳에 이른다. 투자 활성화와 제도적 지원이 이뤄지면 헬스케어 분야에도 스타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메디벤처스는 진료정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병원의 환자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휴레이포지티브는 평소 환자의 혈당·혈압 수치가 의료진에 자동 전송되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개발했다.

진료 현장에서의 아이디어가 기술과 접목된 창업도 있다. 피부과 교수가 창업한 이피코스는 항노화와 주름제거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환자의 침·소변·혈액을 통해 한 시간 이내로 세균의 종류와 양을 알려주는 간편 세균 진단기를 개발한 의대 교수도 있다.

최윤섭 KT융합기술원 수석연구원은 "평소 건강을 관리하는 기술의 혁신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의료비까지 절감할 수 있다"며 "우수한 인력과 IT(정보기술)의 강점을 가진 한국이 전 세계 헬스케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① 반호영 네오팩트 대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생각하며 재활치료 게임을 만들었다. 신체 기능이 떨어진 환자라도 끊임없이 움직이면 정상 기능을 회복할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 투자 붐을 목격하고 한국에서 창업했지만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한 재활치료 게임이 병원들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② 재활치료 게임은 장갑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를 낀 다음 화면 안내에 따라 손가락이나 손바닥, 손목을 움직이면 된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기기라면 모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뇌졸중이나 교통사고 환자들이 쉽고 재밌게 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개발됐다. 매일 향상된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① 미국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디지털 헬스케어, 건강 모니터링기기, 유전체 분석 등 헬스케어 벤처기업이 투자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헬스케어 기업 570곳에 22억 달러(2조 3000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가정에서 혈압과 혈당을 재면 자동으로 의료진에 전송되는 건강관리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 인텔 제공 ② IT(정보기술)를 활용한 헬스케어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손목에 차면 평소의 운동량을 자동으로 측정해주는 웨어러블 기기가 대표적이다. 측정된 수치는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다. 평소 건강관리를 해주는 기술의 혁신이 헬스케어 산업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