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훈 지음|돌베개|332쪽|1만8000원

"청년은 사회의 생명이요, 사회의 동력이라. 청년이 진취적 기상과 희생적 정신에 충실하고 풍부하면 그 사회는 장차 번영과 광영에 눈부신 광채를 발할 것이요. (중략) 조선 민중 억만 대의 광영을 위하여 우리의 고난과 박해와 기아와 추위가 필요하다면, 아! 우리의 따뜻하고 배부름을 버리는 것이, 헌신짝 버리는 것과 다른 바 있으리오." (1922년 1월 9일자 동아일보)

"훈련을 받아야 할 시기의 청년이 훈련을 일반 사회에 주려 했고 훈련을 시킬 사회가 침묵을 지켰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들은 사회의 문화 향상에 노력한다 하면서 향상의 표적이 없었다. 너무나 막연한 관념이었다. 스스로의 불량(不良)을 망각하고 다른 사람을 향도(嚮導)한다는 망상은 일시에 파멸되는 것이다." (1932년 8월 9일자 매일신보)

같은 청년이지만 두 신문에서 전혀 다른 존재로 묘사된다. 윗 글에서 청년이 선구자로 여겨졌다면 아래에선 '불량한 존재'에 불과하다. 둘 다 일제강점기 언론에 실린 글이지만 그 평가는 판이하게 달랐다. '청년(靑年)'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였는가?

청년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책은 19세기 말~1970년대 '청년' 개념의 전개와 변천을 다룬다. 청년이라는 키워드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의 재해석으로 볼 수 있다.

'청년'이 조선에 도입된 시기는 1896년 전후다. 일본이 유럽에서 들여와 '세이넨(靑年)'으로 번역한 말을 조선 유학생들이 사용했다. 1897년 6월 '친목회회보' 5호에는 "청년이란 파괴적 운동장의 솔선이오 진보적 추격대의 기두"라는 내용의 논설이 실렸다. 일본의 근대적 청년 개념을 체계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문건이다. 이 글은 청년을 '국민의 핵심'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근대적 청년 개념의 기본 틀을 형성했다.

청년이라는 말이 전통 사회에서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 문헌 속에서 청년은 '젊은' 또는 '젊은 시절'을 뜻하는 말이었지 '젊은이'라는 특정 세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연장자 존중 의식이 지배적인 전통 사회에서 청년은 세대 주체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쟁'이 시작된 근대 사회에서는 각 분야의 이해 관계에 따라 사회를 이끌어갈 추동 세력을 선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청년이라는 세대 주체가 도입된 것이다.

1900년대 애국계몽운동이 진행되면서 청년은 이전의 봉건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다. 청년은 새로운 학문을 배워 몰락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국민'이 될 수 있었다. 근대 국가에 대한 열망이 들끓던 당시, 교육을 통해 개화되고 문명화된 청년은 이상적인 국민상으로 제시됐다.

시련도 있었다. 수십년의 암흑기가 이어진다. 1930~1940년대 일제 강점기 당시 그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청년은 '제국주의의 시녀'가 됐다. '착실한 청년'의 수준을 넘어 제국주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청년상을 강요당했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은 이른바 '체제 친화적'인 파시스트가 됐고, 침략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형 인간으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1950년대까지 청년은 극우 폭력의 대명사였다. 월남한 반공 청년들이 중심이 된 서북청년회는 제주 4.3사건에 투입돼 양민 학살을 주도했고, 대한청년단은 여순사건을 진압하는 선봉에 섰다. 저자는 이승만이 청년단을 자신의 정치적 전위 집단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국면은 1960년 4월 혁명을 기점으로 역전된다. 혁명은 중고교생, 일반인, 대학생 등이 참여한 거국적 봉기였다. 저자는 4월 혁명을 계기로 대학생에 대한 인식이 대폭 바뀌었다고 말한다. 대학생은 이전까지 공부는 하지 않고 '군 기피가 목적인' 특권 계급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혁명 과정에서 대학생이 새로운 세대 주체로 부각됐고, 청년의 개념 역시 바뀌었다. 저자는 당시 청년이 민중 문화와 학생 운동을 연결시켜 새로운 저항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청년은 정치적 입장과 시대 및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됐다. 책은 청년이 근대화를 겪으며 어떻게 뒤섞이고 어떤 존재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종국에는 독자들에게 지금 청년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묻는다. 사회의 중추로서 역할을 수행하는지, 아니면 국가와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