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은 조선이 건국 후에 도성을 세울 때 우백호로 삼았던 산입니다. 서울 중심부에서 서쪽에 자리해 있습니다. 인왕산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아직은 단풍으로 채색되기 전이지만 초록색이던 열매를 붉은색으로 바꾸어놓은 나무들이 가을을 알립니다.
인왕산 자락은 여러 문학가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문학의 길을 걸으며 그들의 흔적을 살펴보면서 가을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직공원 쪽을 인왕산 들머리 삼아 올라갑니다. 성곽 바깥쪽 길을 걷다 보면 주변으로 산수유의 붉은 열매가 알알이 보입니다.

산수유의 열매

산수유 하면 저는 학창시절에 배운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그 시 이후로 산수유에 관한 여러 시들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만한 감동이나 인상을 주는 시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두운 방안엔 / 빠알간 숯불이 피고,
(중략)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중략)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인왕산 호랑이 상 앞을 지나면 보라색 열매를 매단 나무에 시선이 꽂힙니다.

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

작살나무라고 알려주면 흔히들 작살나는 거냐고 되묻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가지가 작살처럼 마주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삼지창 비슷한 도구인 작살이 언제부턴가 의미가 확장되어서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뜻의 말로 쓰이곤 합니다.

작살나무의 열매가 맛있어 보이긴 하지만 색깔 때문에 걱정이 좀 되는지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계에서 보라색 열매는 사실 흔치 않은 편입니다. 약간 아린 맛이 나지만 단맛도 난다고 알려줍니다. 새들에게 먹힐 전략으로 만든 거니까 독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고 또 그 정도 먹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면 그제야 좀 안심하고 입으로 가져가 봅니다.

가막살나무의 광택이 나는 붉은 열매도 간간이 보입니다.

가막살나무의 붉은 열매

덜꿩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이 좀 더 넓고 잎자루에 턱잎이 없는 점으로 구별하는 나무입니다. 나무껍질(살)이 거무스름하다 보니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열매를 먹어도 되느냐고 또 물어옵니다. 식욕을 자극하는 건 역시 붉은색이 제일인가 봅니다.

일단 된다고 말하니 입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시큼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곧바로 '에퉤퉤'가 나옵니다. 완전히 익어도 시큼한 맛은 사라지지 않는데 새들은 어떻게 먹는 건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새들은 작은 열매를 깨물어 먹기보다 삼키기 때문에 나무들이 맛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조리하는 모양입니다.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레시피라고나 할까요?

정선이 그림으로 그린 수성동 계곡에 이르러 산행을 잠시 미룹니다.

수성동 계곡. 뒤로 인왕산 능선이 보인다.

수성동계곡에서 경복궁역 방향인 언덕 아래쪽으로 걸어가면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숙집 터가 나옵니다.

윤동주 하숙집 터

1941년 당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자신이 존경하는 소설가 김송이 살던 그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쓰였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별 헤는 밤」 하니까 옛날 일이 생각납니다.

1980년대에는 표지에 멋진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아름다운 시가 적힌 연습장을 골라서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건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가 적힌 연습장이었고, 그 다음으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저작권법 위반인데 그때는 그런 일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시에 나타나는 가을은 그리움입니다. 북간도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여러 시인들의 이름을 별 하나에 하나씩 불러보면서 그네들을 그리워합니다. 그 시를 읽고 자라난 어린 문학도가 문학이 아닌 식물에 빠져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라고 이런 글을 씁니다.

경복궁의 서쪽마을인 서촌의 통인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천재시인 ‘이상의 집’이 나옵니다.

이상의 집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입니다. 유리창으로 된 이곳은 이상이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집의 터의 일부로 다방 ‘제비’를 운영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전시물이 한쪽 벽면에 붙어 있었습니다. 1937년 4월 22일자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박태원의 「이상 애사」에 나오는 이상의 부음에 관한 문구입니다.

박태원의 <이상 애사>

‘여보, 상(箱)……’은 죽은 이상에게 하는 말로, 죽은 사람이지만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이상은 일본에서 불온사상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어 감금되어 있는 동안 폐결핵이 악화되어 숨졌는데, 이때 윤동주 시인처럼 생체실험이나 해부를 당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기에 그의 문학작품은 난해한 것투성이지만 수필을 읽어보면 그의 문학수준이 왜 클래스가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수필 「산촌여정(山村餘情)」은 가을빛 서정이 수준 높은 표현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도 조용한 것이 처음으로 별들의 운행하는 기척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라는 구절이라든가 '가을이 올 터인데 와도 좋으냐고 쏘근쏘근하지 않습니까'라는 식의 구절은 이상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

이 수필에는 여주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옵니다. '수수깡 울타리에 오렌지 빛 여주가 열렸습니다. 당콩넝쿨과 어우러져 세피아 빛을 배경으로 하는 일폭의 병풍입니다.'
그런데 마침 근처 민가에 여주가 열려 있었습니다.

여주

여주는 옛날 어르신들은 흔히 유자라고 불렀던 덩굴식물입니다. 완전히 익으면 벌어지면서 씨와 함께 붉은 속내를 드러내 보입니다. 요즘은 여주의 약성이 알려지면서 심어 기르는 곳이 많아집니다.

길을 다시 수성동 계곡으로 와서 자하문 쪽으로 내려오면 끝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이 보입니다. 문학관의 하얀 외벽 위에 가지를 드리운 채 서 있는 건 팥배나무입니다.

윤동주 문학관의 팥배나무

팥알처럼 붉고 작은 열매를 수없이 매달아 자신이 왜 팥배나무인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이 팥배나무에게는 가을인 셈입니다.

그 팥배나무한테서 인생의 가을역에 내려 홀로 서성이는 중년을 봅니다.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읽어주고 싶습니다. 저물어가는 일이 눈물 나게 아름답습니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