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7층 건물 6층 회의실. 목련, 백합 등 고전적인 꽃 이름을 단 회의실에는 직원이 5~6명씩 앉아 있었다. 회의실은 아기자기했다. 위엄보다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다른 회의실은 벽면이 빨간 벽돌로 장식돼 있었다. 시골집에 놀러온 듯한 인상을 줬다. 컴퓨터를 열자 강도높은 무선인터넷망이 쉽게 잡혔다. 게임을 개발하는 IT업체 분위기도 풍겼다.

10월 20일 오후 2시, 서울에서 320km 떨어진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한국농어촌공사를 찾았다. 한국농어촌공사는 47년간 사용한 경기도 의왕 청사를 떠나 지난달 26일부터 전남 나주시 광주전남혁신도시 빛가람동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새 청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공사 건물이라기보다 마치 잘 꾸며놓은 까페를 보는 듯 했다.

농어촌공사는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새롭게 문을 연 8번째 공공기관이다. 광주전남혁신도시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16개 공공 기관이 청사를 옮겼거나, 옮길 예정이다.

농어촌공사 새 청사는 11만5466㎡ 부지에 연면적 4만3370㎡, 지하 1층·지상 17층 규모로 지어졌다. 여기선 이전 청사에서 옮겨온 직원 740여명이 일하고 있다.

◆ 이상무 사장, 취임 직후 새 청사 내부 설계부터 바꿔

20일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나주 청사 17층 카페테리아에서 스마트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싹 다 바꿔버리라 그랬어요. 공간이 바뀌어야 생각도 바뀌거든요.”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65)은 작년 9월 농어촌공사 사장 임명을 통보 받았다. 그는 임명 직후 새 청사 내부 설계부터 바꿨다.

“임명되자마자 ‘청사 이전에 맞춰 공기업 혁신을 선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부 설계도를 보니 이전과 다를 게 없는 거에요. 바로 설계 변경하고, 내부 공사를 전부 새로 했어요. 두 달만 임명이 늦었어도 못 고칠 뻔했죠. 호화청사 논란이요? 이렇게 바꾸니 원래 예산보다 덜 들었어요.”

제일 위층인 17층에 있던 사장실과 임원실은 11층으로 내려왔다. 이 자리에는 직원들을 위한 휴식공간과 까페테리아가 자리를 잡았다. 17층에선 담배를 피거나, 차를 마시는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돌아다녔다.

이 사장은 “원래 사장실이 68평(225㎡)으로 설계됐는데 18평(60㎡)으로 바꿨다”며 “고압적으로 보였던 시커먼 쇼파도 치워버렸다”고 말했다. 반대로 직원 체력단련실은 595㎡에서 1256㎡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지하에는 여직원들이 요가를 할 수 있도록 GX(그룹운동) 공간이 마련됐다.

오기석 한국농어촌공사 스마트워크추진단 부장은 “(기존 청사에) 9개 밖에 없던 회의실이 새 청사로 오면서 49개로 늘렸다”며 “크기를 줄이는 대신 밝고 쾌적한 느낌을 주는 공간, 투명하고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간이 넉넉해졌을 뿐 아니라 회의할 공간을 찾아 떠돌던 불편도 사라지게 됐다”며 “미로 같던 사무실도 넓어지고 산뜻해져 직원들 대부분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6층의 직원 회의공간

◆ 새 청사 키워드는 ‘스마트워크’

농어촌공사 건물 내부는 ‘스마트워크(Smart Work)’에 꼭 맞게 설계됐다. 스마트워크란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시간·장소 제약없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방식을 말한다.

이 사장은 작년 9월 취임사에서 "본사 이전에 맞춰 전자보고와 화상회의를 늘리고, 통합 물 관리 시스템 등 공기업 최초로 스마트워크 성공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농림부에서 유통경제통계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농산물 유통 정보를 수집하는 온라인유통정보망 구축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이 사장은 "1979년에 네덜란드·벨기에· 스웨덴·덴마크·이태리·프랑스·독일 등 유럽 7개국을 돌아봤더니, 유럽이 농업 선진국인 이유가 통계 전산망에 있구나 싶었다"며 "이때부터 어디를 가든 ICT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KT 등에서 스마트워크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끌어왔다. 6월에는 아예 스마트워크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스마트워크 추진단’을 설치했다.

◆ 모바일 앱으로 보고하고, 태블릿으로 보고 받아

한국농어촌공사 직원들은 보고 안건이 있을 때마다 ‘mKRC’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이 사장은 이 어플리케이션 덕에 이동 중에도 사무를 챙길 수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농어촌공사 임원 180여명에게 올 초 태블릿PC ‘갤럭시 탭’을 1대씩 지급했다.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게 업무를 보면서,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라는 뜻이다.

“무슨 회의가 그렇게도 많던지. 간부회의, 월례조회 이런 불필요한 모임자리부터 없앴어요. 대면 결재도 잘 안해요. 대신 항상 원격으로 보고할 수 있게 스마트폰 앱을 만들었더니 문제가 하나도 안 생기더라고요.”

이 사장이 내린 스마트 워크 한달 시행 평가다.

한국농어촌공사 임원이 갤럭시탭을 이용해 원격으로 전자회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이와 별도로 신분증을 찍어야 작동하는 클라우드 프린터를 설치해 개인별·부서별 종이 사용량을 억제하기로 했다. 불필요하게 종이를 사용하지 말고, 이메일이나 전자보고를 권장한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각종 보고서와 지침도 전자북(e-book) 형태로 바꿔 전 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오 부장은 “농어촌공사 업무 특성상 사무실을 떠나 전국 방조제나 저수지에 직접 나가 살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일은 정해진 자리에서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했다”며 “특히 청사를 이전하면서 나주에 연고가 없거나, 가족을 두고 내려온 직원이 80%가 넘게 돼 업무 환경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는 현재 경기도 수원과 의왕에 나주로 출근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일부 사무실을 개인 책상이 없는 스마트 오피스로 운영하고 있다. 일부러 지정좌석을 없애고 필요에 따라 자리를 옮기며 일할 수 있도록 벌집 모양 책상을 설치했다.

이 사장은 나주 청사 이전이 “한국농어촌공사(KRC)가 ‘세계적인 농어촌공사(WRC)’로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올해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B등급 유지하면서 공기업 혁신 측면에선 그런 대로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지난달에 ICID(국제관개배수위원회) 광주총회도 잘 치렀고. 농어촌공사 사장으로서 과욕은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서 직원들 키우고, 공기업 혁신해봐라’ 이거 하나는 욕심을 내려고 합니다. 이제 새 건물에서 젊은 직원들 맨파워(인적자원의 경쟁력) 기르는 데 집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