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삼성 서초타운 전경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삼성그룹의 나머지 건설 부문이 어떻게 통합·재편될지 주목된다.

삼성그룹의 건설 사업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 진행 중),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등으로 흩어져 있다. 당초엔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쳐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12월 1일부로 삼성엔지니어링이 삼성중공업과 합병하게 되면서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은 가능성이 낮아진 상태다.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지주회사 전환 내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제일기획, 삼성SDS,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종합화학 등 그룹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많이 갖고 있다.

◆시나리오① 삼성물산-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합병 가능성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기함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그룹 핵심계열사 지분을 많이 갖고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0.57%을 갖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분(3.38%)을 상속 받으려면 상속세(세율 50%가량)를 내야 한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상속세를 내는 대신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제일모직-삼성SDI 합병,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삼성SDS 상장 등 계열사 구조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초창기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은 전국에 산재한 삼성 사옥을 관리하고 국토 개발에 참여하기 위한 부동산 개발 회사로 설립됐다. 현재 제일모직은 부동산 관리 외 건축, 인테리어, 패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큰 틀에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건축 관련 사업이 삼성물산 등 건설 부문과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기업이다. 이재용 부회장(25.1%), 이부진 사장(8.4%), 이서현 사장(8.4%) 등 3남매가 제일모직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제일모직이 상장한 뒤 삼성물산과 합병해 삼성전자 지분을 늘린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면 제일모직 주주의 지분율이 낮아진다. 지분율 하락을 막으려면 합병 전에 삼성물산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지분 확보를 위해선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 합병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제일모직과 합병할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지만 현재 상황에서 직접적 합병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다만 삼성물산 등 주요 지주회사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분리한 뒤 상장 후 제일모직에 지분을 몰아주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선 삼성이 핵심 계열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한 뒤 오너 일가의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기 키움증권 연구원은 “그룹 관계사 지분이 많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가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회사 3사와 제일모직을 합병해 통합 지주회사를 출범하는 시나리오를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② 삼성물산-통합 삼성중공업과 합병 가능성

당초 업계에선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삼성물산은 주택·건설 부문을, 삼성엔지니어링은 플랜트·설계 부문을 담당하고 있어 이 두 회사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서초동 삼성 서초타운 전경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이 삼성중공업과 합병되면서 이번 합병이 유사 업종 계열사를 통합시키는데 1차적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후계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큰 계획의 일부라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재계·증권가에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적자를 극복하고 나면, 결국에는 삼성물산과 다시 합쳐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약 4%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삼성중공업 등 건설사업 부문을 한데로 모으는 것은 급한 이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선 삼성엔지니어링은 11월 27일부터 주권이 거래 정지되고 12월 1일 기준으로 삼성중공업과 합병되고 나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이 보유한 엔지니어링 지분은 기존 7.8%(2013년 7월)에서 합병 후 2.3%로 낮아진다.

일단 삼성 내부에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사히 이뤄질지 촉을 세우고 있다. 두 회사의 주가가 하락해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는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주식을 되팔 수 있는 주식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두 회사는 수억원, 많게는 수조원의 돈을 들여 주주로부터 주식을 사줘야 한다.

김형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2월 1일자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무사히 합병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합병이 잘 되고 나면 이후에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삼성 그룹 차원의 전체적인 그림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