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의 그룹 경영 합류로 두산 4세들에게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형제 경영’ 기치를 내걸고 있는 두산은 3세 형제 중 4남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 총수이지만, 그룹 지배력은 이미 4세들에게 넘어가 있습니다. 박용만 회장 등 3세 들이 가진 그룹 지주사 (주)두산 지분이 11.59%에 불과한 데 비해 4세들이 가진 지분이 30%에 육박하기 때문입니다. 3세 형제들이 이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그룹 지분 상당수를 자녀들에게 증여한 탓입니다.

이런 와중이 두산그룹과 거리를 뒀던 박서원 부사장이 계열사인 오리콤에 들어오면서 두산가(家) 4세 경영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부사장의 오리콤 합류로 두산 4세 전원이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그림이 완성됐기 때문이죠.

◆ “두산 대주주는 박용만 회장 아닌 4세 박정원”

두산가 4세 경영의 정점에는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 있습니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의 가장 큰 어른인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으로 (주)두산 지분 6.40%를 보유한 최대 주주입니다. 이어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박용곤 회장 차남)이 4.27%로 2대 주주 위치에 있습니다. 지분율만 놓고 보면 그룹 총수인 박용만 회장(4.17%)은 3대 주주입니다.

이 밖에도 두산 4세들은 박진원 두산 산업차량BG장 사장(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장남)이 3.64%,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박용성 이사장 차남)가 2.98%, 박태원(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장남) 두산건설 부사장 2.69%,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이 1.96%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대주주 위치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지분 증여가 사실상 마무리된 두산그룹이 4세 사촌 중 장자인 박정원 회장 중심으로 차기 경영 구도를 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정원 회장이 이미 2012년부터 (주)두산의 지주부문 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4세 후계 구도를 자연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두산은 최근 그룹 커뮤니케이션팀 인력 일부를 (주)두산 지주 부문에 배치하며 홍보조직을 신설했는데, 이 역시 박정원 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두산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왼쪽) 회장이 지난 2010년 2월 두산베어스의 전지훈련지인 미야자키 캠프 히사미네 구장을 방문해 선수단과 임직원을 격려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구계에서는 명망이 높습니다. 지난 2009년부터 두산베어스 야구팀 구단주를 맡고 있는데, 적어도 한 해 20여 차례는 잠실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한다고 합니다.

두산베어스는 2군의 무명 선수를 1군의 스타플레이어로 키워내는 일이 많아 ‘화수분 야구’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같은 두산베어스의 선수 양성은 박정원 회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입니다.

올해 4월에는 경기도 이천에 400억원을 들여 베어스파크라는 이름의 2군 연습장을 완공했습니다. 2만4037㎡(약 7200평)인 베어스파크는 조명탑과 중계방송시설이 1군 구장에 버금가고, 최첨단 재활 치료기를 갖춰 미국 메이저리그 훈련장 못지않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 주력 계열사 실전 부진한데 경영 후계구도 구축?

하지만, 두산그룹 측은 박정원 회장 등 4세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일축합니다. 1955년생(生)으로 올해 59살인 박용만 회장이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어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둘 시기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성 이사장, 박용현 이사장 등은 이미 일흔을 넘긴 나이로 그룹 경영일선을 떠났기 때문에 지분을 자식들에게 넘겼지만, 박용만 회장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 같은 설명과 상관없이 최근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 경영실적이 좋지 않다는 점도 후계구도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두산그룹은 2000년대 시작된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의 주력산업을 주류·식품업종에서 중공업·기계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원 회장이 이끄는 두산건설은 두산중공업으로부터 양도받은 HRSG(배열회수보일러) 사업부의 실적 호조 덕에 지난해부터 영업이익 흑자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산 제니스, 부산 해운대 제니스 등 대규모 사업장의 미분양 사태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두산건설은 최근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억원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룹 주력사인 두산중공업은 수주 부진에 따른 주가하락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기준 두산중공업의 수주잔액은 4조원가량으로 연간 수주목표(10조원)의 40%가량만을 채운 상태입니다. 이 같은 수주부진 등에 영향받아 두산중공업 주가는 지난 7월 24일 3만4000원을 기록한 이후 30%가량 하락해 최근에는 2만30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미국 중장비 업체 밥캣을 인수해 한동안 고전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북미시장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면서 활력을 되찾았지만, 최근에는 중국 경기침체라는 복병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4세들이 자기 실력 보여야 후계구도 논의할 수 있어”

재계에서는 두산가(家) 4세들이 자기 실력을 보여줘야 경영권 후계 구도 구축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두산그룹 3세들은 그룹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조정을 이끌며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4세들이 아버지와 삼촌들 못지않은 경영 성과를 보여야 자연스러운 후계구도 구축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두산이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연료전지, 3D프린팅 사업 등을 추진하는 데 4세 경영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두산가 4세들이 경영권을 이양받는 데 충분할 정도로 지분 이양이 이뤄진 상황이지만, 문제는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질 정도의 성과가 없다는 것”이라며 “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하는 데 성과를 보여줘야 경영권 승계를 논의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