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 1대학 교수는 통신 등 다양한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바람직한 정부 규제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지난 1일 실시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에 대해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 1대학 교수는 어떻게 바라볼까. 티롤 교수는 산업 정책과 게임이론 전문가로 특히 통신산업을 포함한 IT(정보기술) 산업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 수십 년간 여러 연구 성과를 내왔다. 타계한 장 자크 라퐁 전 툴루즈대 교수와 그간의 연구 성과를 모아 2000년 ‘통신시장 경쟁(Competition in Telecommunications)’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통신산업은 독과점적 성격을 갖고 있어 정부규제가 중요한 데다, 빠른 기술 발전과 다른 IT산업과의 연관 등 새로운 연구 영역이 많다. 특히 최근 단말기유통법(단통법) 문제로 통신시장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통신산업을 오래 연구한 티롤 교수의 견해를 경청해 볼만하다.

◆“가격 차별 금지, 통신사 입맛 맞춰 가는 경우 많다”

장 티롤 교수는 고 장 자크 라퐁 전 툴루즈대 교수와 함께 통신 시장에서 정부규제를 분석한 '통신 시장에서의 경쟁'이란 책을 지난 2001년 MIT대출판부를 통해 내기도 했다.

티롤 교수는 저서 ‘통신시장 경쟁’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을 규제할 때 흔히 사용하는 ‘인센티브 기반 접근(incentive-based approach)’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역설했다. 인센티브 기반 접근은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실제 투입된 비용을 추정한 뒤 이를 기반으로 가격을 인가받도록 하는 방식의 규제를 가리키는 용어다.

티롤 교수는 “통신사업자들이 요금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더 많이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는 정부가 기업의 실제 비용-수익 형태를 잘 모르고, 기업은 제품·서비스의 품질을 떨어뜨리거나, 원가를 깎는 방식을 채택해 이익을 높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격을 올리지 못하거나 과도하게 비용을 지출한다며 우는소리를 하지만, 실제로는 높은 이윤을 거두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규제기관이 기업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도 중요한 문제라고 티롤 교수는 지적한다. 정부가 기업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한적으로 받는 일종의 ‘거간꾼’ 역할을 맡고 있어 자연스럽게 정부의 규제는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역할을 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티롤 교수는 “통신사가 고객에 따라 가격을 높이거나 낮추는 ‘가격 차별’을 바로잡겠다고 정부가 나선 경우를 분석한 결과 그 가운데 상당수가 규제포획 상황에 빠지고 만다”고 말했다.

티롤 교수의 분석을 한국 통신시장에 적용해보면, 통신사와 제조업체가 지원금 규모를 30만원으로 제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현재의 단통법은 결국 소비자 이익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동통신 시장 1위 업체인 SK텔레콤이 통신요금을 인가받도록 한 휴대전화 요금인가제를 없애는 것이 통신회사 간 경쟁을 활성화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도 보여준다.

◆과당 경쟁 보다 과소 경쟁 문제 발생할 수도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등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 취지 가운데 하나로 통신사의 요금인하 및 투자여력 확보를 들고 있다.

2~3개 기업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과소 투자(under-investment)’가 기업들의 ‘균형’ 상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티롤 교수는 드루 푸덴버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공동연구로 증명했다.

과점 시장에서 각 기업은 상대 기업의 신규 투자나 가격 책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티롤 교수는 1위 기업이 적정 수준 이하로 투자하면 해당 시장 전체의 투자 규모가 줄어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설비와 기술개발에 선도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1위 기업이 투자를 줄일 경우, 2~3위 기업이나 신규 진입을 모색하는 기업들도 투자에 따르는 잠재적 비용이 높다고 판단해 투자를 꺼리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2~3위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다면 다른 기업들도 이를 쫓아가면서 모든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2~3위 기업은 1위 기업의 소극적인 투자 행태를 보고 투자 규모를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상당수 국내 통신 규제 전문가들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김원식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없애는 것만으로 통신사들이 바로 요금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다”며 “단독으로 요금 경쟁에 뛰어들 경우 감내해야 하는 손실이 단기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휴대폰-통신서비스 결합판매 규제해야

지난 1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 시행 당시 정부는 투명한 휴대폰 및 통신 상품 판매 구조가 안착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휴대폰(전화기)과 이동통신 서비스를 함께 판매하는 관행도 티롤 교수는 타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2005년 발표한 논문에서 2개 이상의 상품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것을 언제 규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밝혔다. 그는 이 논문에서 “시장 지배력을 갖춘 기업이 끼워 파는 상품을 주목해야 한다”며 “시장지배적 업체의 경쟁 업체가 끼워파는 상품을 소비자가 바꾸기 어렵고, 경쟁 업체가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기 어려울 경우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끼워팔기로 인해 소비자들이 불리한 가격을 감내하면서 상품을 구매할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한국처럼 휴대폰과 이동통신서비스를 함께 판매하는 시장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장중혁 애틀러스리서치 이사는 “최근 국내 통신시장은 고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형태로 급속히 변화했다”며 “통신 3사는 단말기 판매를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 스마트폰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고액 요금제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인식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는 “보조금 액수를 제한한다 해도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한 통신사의 경쟁 양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휴대폰 구입 지원금(보조금)을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업체가 각각 얼마씩 부담하는지 표시하는 ‘분리공시제’를 도입하거나, 아예 소비자가 휴대폰(전화기)과 이동통신 서비스를 따로따로 구입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