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 지음|바다출판사|408쪽|1만4800원

과학 교양서적을 읽는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함은 아니다.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해당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은 과학 지식을 통해 지적 영감을 얻거나 그냥 읽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

과학적 지식의 지적 영감은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이 세계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그와 대척점에 있는 창조론을 인정하는 사람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철학의 주춧돌인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진화론, 창조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세상에 존재하거나 소멸한 다양한 생명체의 탄생과 변화를 설명하는데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고등학교 때까지 생물 시간에 배운 피상적인 지식 이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리, 과학적 진실은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기에 피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세상의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해 생명체가 자연에 적응해 가는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복잡다기한 영장류까지 나타났다. 진화론에 대해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연결고리를 좀 더 촘촘히 하고, 진화론을 다른 생각에 적용하려면 진화론의 핵심 문제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고민과 사고의 과정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다윈의 식탁. 현대 진화론의 여러 논쟁점들을 진화론의 대가들이 마치 서로를 눈 앞에 두고 논쟁을 펼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진화론의 핵심 문제들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런 서술방식을 사용했다.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와 적절한 비유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먼저 저자가 다윈의 아바타가 시청자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푼 ‘이것이 진화론이다’라는 내용을 보자. 생명체의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 진화는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다. 생명체의 종의 변화는 더 고등한 생명체로 진보하는 ‘생명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나무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것처럼 생명체는 한 두개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한 생명이 다양하게 분기해왔다는 것이다. ‘생명의 나무’론이다.

종의 변화와 분기에 작용하는 힘은 ‘자연선택’이다. 즉 생명체가 자연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화가 항상 최적의 상황으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가 만들어낸 어이없는 신체구조도 있다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눈에서 시신경이 망막 앞으로 나온 것, 남성의 요도가 전립샘 중앙을 통과하는 것 등을 예로 든다.

저자가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풀었다지만 책 전체는 배경 지식이 많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논쟁하는지 아는 것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논쟁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자연선택의 힘은 얼마나 강력한가. 자연선택의 산물인 ‘적응(adaptation)’과 적응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강간도 적응인가.

둘째, 자연선택이 과연 어느 수준에서 작용하는가. 개체인가, 유전자인가. 아니면 집단인가. 즉, 각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연에 적응하는데 협동하는 행동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가. 도덕성, 이타심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셋째,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핵심으로 등장하는 유전자란 무엇인가. DNA 염기서열인가, 아니면 세포분자인가. 같은 DNA 염기서열을 가졌어도 주변 환경에 따라 달리 생명체의 외양이 달리 표현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넷째, 진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나, 아니면 계단을 오르듯 급격하게 이루어지나.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대한 문제다.

다섯째, 생명은 진보(progress)하는가. 진화를 진보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정당한가. 생명체 구조의 복잡성의 증가는 진보적 진화의 증거는 아닌가.

저자는 이런 논점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 진화론 자체의 논점이라기 보다는, 진화론을 둘러싼 사회적 논점인 진화론과 종교에 대해 진화론내 대척점에 있는 두 학자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저자는 2008년 처음 쓴 ‘다윈의 식탁’에 설명을 덧붙이고 출판사를 바꾸어 이번에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을 읽기 전이나 읽고 난 후, 저자가 올해에 낸 ‘다윈의 서재’와 이 책에서 언급된 책 서너권을 읽으면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과 사고의 과정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